성(城)은 옛날과 같은 전술적 개념이 아니다. 베토벤 음악은 견고한 성과 같다든지 유엔은 '인류평화의 성'을 쌓았다는 등 표현에서 보듯 역사성, 문화성의 성격이 더 강하다. 성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축조물이고 삶의 터전이어서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속담이 말해 주듯 꿈과 향수가 짙게 배어 있고 역사가 살아 숨쉰다. BC 8000년 전의 이스라엘 예리코성, 한니발 장군으로 더욱 유명한 카르타고성이 그런 것이다. 특히 영국에서는 웨일즈, 에딘바라 등 많은 성이 잘 보존돼 관광객이 몰리고 해마다 이곳에서 축제를 개최한다. 백제문화제도 생각해 볼 만하다. 백제문화제는 독일의 '10월 축제'처럼 세계 각국으로부터 관광객을 끌어들여 문화강국으로의 백제를 재현할 수 있는 소재가 많다. 또 그것이 백제의 정신을 현대적 에너지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완구 지사가 밝힌 백제 700년 역사를 상징하는 700m '백제성' 쌓기의 구상은 매우 관심을 끄는 것이다. 백제에 대한 사랑과 백제혼의 살아 있는 상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떻게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끌어 들이냐 하는 것.충청인은 물론 출향인사, 특히 일본인 등 외국인까지 어떻게 참여시킬 것인가가 문제다.

지금 와서 백제성이 재탄생되는 것이 어색한 건 아니다. 세계 8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만리장성도 오늘과 같은 성의 규모를 갖춘 것은 14∼15세기 명대(明代)에 와서다. 성(城)은 그렇게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축조되는 것.

지금 백제성으로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이 185개가 있고 대전·공주·부여 일대의 것만도 81개나 있다. 따라서 이 가운데 대표적이고 상징성이 강한 성을 선택하여 복원하는 것도 좋다.

그곳에 백제의 기상을 표현할 벽화를 그리면 상징성은 물론 세계인이 찾고 싶은 명품이 될 수 있다.

벽화가 있는 성!

얼마나 멋이 있는가. 물론 여기 벽화에는 저명한 작가가 동원 돼야 한다.

백제의 성지(城趾)를 답사하며 역사를 음미할 수 있는 '성지순례 코스'를 개발하는 것도 생각해 볼만하다.

아울러 내년부터는 백제문화제의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 시킬 필요가 있음을 말하고 싶다. 예를 들어 일본 한류의 본류는 백제다.

백제의 옷이 일본을 유행시킨 것만 해도 그렇다.

"아스카절 건축공사가 시작된 지 5년째 되던 해의 일이다. '스이코 여왕 원년(593) 1월, 아스카 땅에서 한창 건축 중이던 아스카노데라 찰주를 세우는 법요 때 만조백관이 모두 백제 옷을 입었고 구경하던 사람들이 기뻐했다'고 전해진다.(홍윤기 교수의 역사기행 '일본 속의 한류를 찾아서')

그런데 이번 백제문화제에서는 백제의 의상에 대한 발표회 같은 문화사적 조명이 없어 아쉬웠다.

서동요, 정읍사 등은 너무 멋진 드라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헤리포터'하나로 한국의 반도체로 벌어 들이는 것만큼 큰 돈벌이를 영국에 안겨준 '이야기 산업'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어떻게 하면 백제의 설화들을 '이야기산업'으로 이끌 수 있을까? 그런 학술세미나가 앞으로 축제기간에 개최되면 좋을 것이다.

흔히들 우리 민족을 한(恨)의 민족이라고 한다. 그래서 무슨 축제니 문화제 하면 '한'과 연계를 맺으려 한다.

그러나 백제문화는 한의 문화가 아니다. 흥겹고 미소가 있고 너그러움이 있는 문화다. 나약함이 아니라 강함과 열정이 있는 문화다. 부분적으로나마 중국과 일본에 식민지를 거느린 문화다. 이완구 지사가 이번 백제문화제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메시지는 바로 그것이 아닐까? 백제의 전략적 요새였던 계족산에서 공주까지 봉화가 전수되는 장관을 연출한다든지 100마리의 말(馬)이 장대한 퍼레이드를 벌이는 것. 그리고 세계인이 감탄할 수 있는 버전 업된 공연을 강조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마침 좋은 길조라도 되듯, 지난주 백제문화제가 끝나자마자 부여 왕흥사에서 백제인의 예술혼을 황홀하게 느낄 수 있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사리장엄구가 발굴돼 큰 뉴스가 되고 있다. 이렇듯 백제문화제의 진정한 부활은 이제 그 시작이 되어야 한다.?? <본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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