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매일 새벽 오르는 도솔산 공원에는 여기저기 흩어진 교회 명함을 자주 본다. 산길에 웬 명함들일까…. '구원 받으라'는 내용의 팜플렛도 자주 보게 된다. 등산객마저 전교 대상으로 하는 공격적 선교 방법이다.

아프가니스탄에 23명이 가서 탈레반에 인질로 잡혀 40일 이상 국내외를 들끊게 만든 샘물교회가 무모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도 그 공격적 선교방법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나라 교회신자가 점점 감소현상을 나타내는 것은 미국의 잘못된 선교방식의 전철을 그대로 밟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70% 철학' 이 있다. 무엇이든 극단적으로 가지 않고 70%에 머무는 여유를 보이는 것이다. 지구의 바다와 육지의 비율, 공기 속의 산소와 질소의 비율 등등. 우주의 구성 신비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는 종교에 광신도가 없다는 것. 70%를 넘어 광신이 될 때 문제가 생긴다.

남의 종교를 무조건 이단시하고 그들 신앙의 상징은 모조리 우상이라고 취급하는 배타성, 극단주의가 한국에서는 학교 운동장에 세워 놓은 단군상을 때려 부수게 했고 유럽에서는 1095년부터 175년 동안이나 십자군전쟁을 일으키게 했다. 보이는 것만 우상이 아니다. 이와 같이 보이지 않는 배타성의 신앙관이야 말로 더 무서운 우상이다.

원래 이슬람은 테러의 종교가 아니다. 그런데도 어린 소년으로 하여금 지하드(聖戰)이라는 이름으로 자살폭탄을 안고 죽음으로 몰아가게 하는 것은 '우상'을 신앙으로 착각하는 극단주의 이슬람이다.

인도의 힌두교는 꽃으로도 여자를 때려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그들 일부 극단주의 신앙을 가진 부족들은 여성의 금욕생활을 위해 잔인하게도 여자에게 할례를 강행한다. 종교의 이름으로.

요즘 우리나라 언론을 장식하고 있는 것에는 샘물교회 신도들의 탈레반 인질사건 말고도 또 하나가 있다.

동국대 교수로 있다 허위학력이 탄로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신정아 씨. 거기에 으레 따라 다니는 것이 청와대 모 인사의 이름과 스님의 이름이다. 매일 언론에 그 스님의 얼굴이 등장하는 것이 민망하다. 또 사제 옷을 입고 정부기구의 책임을 맡는 것은 국민들에게 어떻게 비쳐질까?

도무지 우리 종교계에 사건이 끊이질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에는 늘어나는 것이 종교시설이다. 대형화되고 고급화되는 이 시설들은 불황이 없다. 최근에도 시내 모처에 민족종교로 분류되는 대형 교당이 세워지고 있다.

이에 대해 도올 김용옥 교수는 우리 종교지도자들이 세속적 집념에서 떠나야 하며 자본주의적 논리를 초월하는 나눔의 혁명을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한 말은 귀 담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는 "교회도 사회에 십일조를 내라"고 까지 했다.

그래도 우리가 위안을 받는 것은 불교, 기독교 등 모든 종교에 이 시대를 향해 예언자처럼 외치는 종교 지도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존경받는 불교계의 법정(法頂) 스님은 '인간이 죽을 때 재산, 육신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지만 영혼의 그림자처럼 죽은 이후에도 따라다니는 것이 업(業)이니 업의 그물에서 벗어나라'고 경고했고 한국 개신교의 대표적 원로 목사인 옥한음 목사는 "이놈이 입만 살아서 회개한 한국 교회의 종입니다. 겉모양과 달리 내면은 죄악이 쌓여 있는 한국교회를 깨끗하게 하옵소서"하며 지난 7월 대부흥 100주년 기념대회에서 교계 전체의 자성을 외쳤다. 모든 종교, 종파, 그리고 많은 국민들이 감동했다. 이 외침들이 더욱 퍼져 자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본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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