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전 막을 내린 공산당 제17차 전국대표대회에 장쩌민(江澤民) 前국가주석이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는 "이번 대회 이후에는 국가중대사를 나에게 상의하지도 말라"고 선언했다. 수렴청정(垂簾聽政) 안하겠다는 것이다. 멋진 이야기다.

2002 대선 때 이회창(李會昌)씨가 '검은 돈' 20만 달러를 받았다고 폭로, 허위사실 유포죄로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아 공작정치의 대명사처럼 된 설훈씨(지금은 손학규 경기지사 캠프에 합류)는 지난 4월, 전남 무안 - 신안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앞두고 묘한 발언을 했었다.

DJ(김대중 前대통령)의 차남 김홍업씨의 출마를 둘러싸고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을 때였다.

설씨는 김홍업씨의 출마가 범여권 통합에 긍정적인 작용을 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통합에 도움이 되는 상황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한 것이다.

설훈씨의 이 같은 전망은 DJ의 가슴속이라도 다녀 나온 듯 정확하게 적중하고 있다. 설씨는 1000명이 넘는 신안지역 민주당원, 광주 YMCA 등 많은 사회단체와 지식인들이 그의 출마를 한사코 반대했음에도 출마강행의 배경을 일찌감치 예견했으니까…. 과연 홍업씨는 국회의원에 당선되자 불과 3개월 만에 자신을 당선시켜 준 민주당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탈당했다. 그리고 범여권 신당에 뛰어들었다.

김홍업 - 그는 증여세 포탈과 수십억 원을 받고 이권청탁을 한 죄로 징역 2년, 추징금 2억 6000만원, 벌금 4억 원을 선고 받은 사람이다. 그리고 1년 6개월을 복역했고 2년전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사면이 됐다.

그런 인물을 아무리 아들이지만 무엇때문에 DJ가 호남의 자존심도 생각않고 무리하게 출마를 강행했을까 했는데 이제 그 속뜻이 들어난 셈이다.

정말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DJ가 국내정치무대의 수렴청정에 왜 그렇게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수렴청정의 태풍속이 거셀수록 민주당 박상천 대표와 조순형 의원이 돋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탈당 → 창당 → 탈당 → 배신… 그렇게 명분도 신뢰도 없이 반복되는 정치 판에서 원칙과 순리를 고수하는 신선함 때문일까?

박상천 대표는 잡탕밥이 되는 범여 신당은 갈 명분도 없고 가서도 안 된다고 버티고 있다. DJ의 원격조정과는 사뭇 어긋나는 것이다.

조순형 의원 역시 마찬가지. 거기에다 그는 끝까지 대통령 선거에 임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죽어도 go" 하겠다는 것.

두 사람 다 명분을 중히 여기는 고집으로 정평이 나있다.

특히 조 의원은 국회도서관 이용 1위가 말해 주듯 틈만 나면 공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청와대가 내민 헌법재판소 전효숙 소장 임명의 허를 찌른 법이론을 제공한 것도 그다. 또한 그는 DJ의 차남 홍업씨의 출마를 반대하기도 했고, 청와대를 향해서도 직언을 마다 않는 "미스터 쓴 소리". 물론 고집과 소신, 쓴 소리가 나라를 이끌 대통령 자질의 전부는 아니다. 그래도 조의원이 대통령 출마 선언 열흘도 못돼 범여권 후보군에서 2~3위로 껑충 뛰어 오를 수 있었음은 우리 국민들이 무엇에 목말라 하는가를 시사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박상천 대표나 조순형 의원이 국회의원 아홉명에 불과한 미니정당으로 막강한 DJ의 수렴청정과 주변 옥죄기에 얼마나 버틸지는 모른다. 도중에 무너질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외롭게 싸우는 모습만으로도 우리는 한껏 위안을 얻는다.

?<본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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