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이성계는 왕비와 계비에게서 8명의 왕자를 두었고 그 가운데 태조 본인보다 더 적극적으로 고려를 무너뜨려 아버지를 왕위에 앉힌 1등 공신은 다섯째 아들 방원(芳遠·뒤에 태종)이었다.

그래서 모두들 다음 대권은 당연히 방원에게 돌아가리라 생각했는데 태조는 계비를 사랑하여 그 몸에서 난 일곱째 방번(芳蕃)을 세자로 책봉하려 했다. 그러자 왕자끼리 죽고 죽이는 유혈사태가 발생했는데 이것이 '왕자의 난'이다.

권력승계의 실패가 태조의 말년을 슬프게 만들었다.

요즘 범여권의 친노·반노 싸움 속에 떠오르는 대선주자들을 보면 '왕자의 난'을 생각하게 한다.

소위 '친노(親盧)' 그룹으로 불리는 이해찬 전 국무총리를 비롯 한명숙, 김혁규, 유시민 장관 등이 있고 '반노(反盧)' 파로 불리는 정동영, 김근태 열린우리당 전당의장과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지금은 중도개혁이라는 독자세력을 만들고 있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 천정배 의원 등 모두 8명이 있다. 우연히도 태조 이성계의 8왕자와 같다.

태조가 왕자 관리를 소홀히 하여 참변을 빚은 것과는 달리 노무현 대통령의 '왕자관리'는 적극적인 게 다르다.

오히려 대통령의 간여가 지나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고 건 전 국무총리,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에 대한 품평으로 왕자의 대열에서 낙마시켰고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보따리 장사'에, 정동영·김근태 전당의장에게는 "정치를 그만두라"고 직격탄을 날려 양쪽 모두 감정의 날을 세우고 있다.

그러면 여기에서 대충 노심(盧心·노대통령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짐작할 만하다. 이번 대선에서 친노파가 집권하든지 실패해도 그 다음 선거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고 이 정치세력을 통해 노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추리다.

이들 '8왕자군'에서 노 대통령의 직격탄을 맞고도 고 건, 정운찬처럼 탈락하지 않고 부지런히 뛰고 있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에 대해서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반한나라당 세력을 모아 남북과 지역 등 모든 이념ㆍ노선을 중도로 융합하는 것을 표방한 그는 제3지대에서 독자세력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며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코드에 들어가 있다.

우선 손지사는 DJ의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나아가 북한의 개성공단뿐 아니라 북한의 여타 지역에도 이와 같은 공단을 조성하는 것이 북한도 돕고 중국의 벽에 막힌 채 양질의 노동력에 갈증을 느끼는 우리 중소기업의 욕구를 채워줄 상생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난주 북한 방문은 그에게 이와 같은 노선의 무게를 더해 주었다.

따라서 손 전 지사를 보는 '노심(盧心)과 김심(金心·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음)'의 묘한 차이가 있다. 물론 대선전략 역시 호남+충청은 환상이라는 '노심'과 오히려 전통적 지지표를 주장하는 '김심'도 다르다. 범여권 통합을 바라는 DJ, 열린우리당을 살리려는 노 대통령… 두 마음도 거리가 있다. 이렇듯, '왕자의 난' 밑에는 궤를 달리하는 '노심'과 '김심'이 흐르고 있다.

특히 DJ 입장에서는 남북문제만은 자신의 영향력을 계속 행사하고 싶을 것이고 4·25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둘째 아들을 당선시킨 호남민심을 대선주자들은 업고 싶을 것이다.

어쨌든 한나라당 빅2의 아슬아슬한 갈등과 현재로서는 모두 5% 미만의 인기에 불과한 범여권 '8왕자의 난'이지만 전개될 양상에 따라 대선정국은 긴박감을 더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명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을 보는 백성의 눈초리요 역사의 시침(時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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