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년 6월 24일 64만 대군을 이끄는 나폴레옹은 네만강을 건너 러시아 심장부로 진격, 9월 14일 모스크바에 입성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모스크바에서 퇴각하며 시내에 불을 질러 아무것도 남겨 놓지 않아 유령의 도시가 돼 버렸다. 이른바 '초토화 작전'.

텅빈 잿더미 모스크바에서 허를 찔린 프랑스군은 누구를 상대로 싸울 적도 없었고 대군을 먹일 먹거리도 없었다. 거기에다 모스크바의 겨울은 빨리 찾아왔고 매우 추웠다. 마침내 나폴레옹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10월 19일 모스크바 철수를 단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랑스군은 원정에 지치고 추위에 동사자가 속출하는 등 64만 대군 중 겨우 2만 5000명 만이 살아서 마네강을 건넜다. 결국 2년 후 나폴레옹은 몰락하고 만다.

4월 25일 대전 서을의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은 나폴레옹처럼 막강한 화력으로 공격해 왔지만 충청도 특유의 가슴 깊이 숨겨놓은 자존심은 꺾지 못했다.

압도적인 당의 인기, 그리고 70%에 이르는 박근혜 + 이명박 두 대선주자의 인기를 앞세운 공격에 서을은 쉽게 점령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곳에 한나라당과 대각선을 이루었던 열린우리당의 후보는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그림자도 없었다.

심대평 후보에게 노 정권의 비판을 가할 수도 없고 결국 '모스크바' 초토화 작전에 한나라당은 좌충우돌한 것.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음으로써 심대평 후보가 이익을 얻게 되고 지역 내 호남표를 유도한 것이 나폴레옹이 모스크바에서 허를 찔린 것과 같은 전략을 성공시킨 것이다. 한나라당은 12월 대선에서도 그렇게 허를 찔릴 가능성이 있다.

정말 범여권은 전남 무안·신안에서도 후보를 내지 않고 DJ의 둘째 아들 김홍업씨를 당선시킴으로써 다음 대선을 위해 충청 + 호남의 큰 그림을 그리는 작전에 일단 성공한 것이다.

물론 국민중심당이 한나라당의 우군이 될지, 범여권의 라인에 설 것인지 독자세력을 구축할지는 아직 모르지만 이제 그 영향력은 어디가 되었든 폭발적이다. 따라서 앞으로 충청권의 기수를 두고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과 심대평 국민중심당대표가 경쟁을 벌일 수 있다.

두 사람 다 충남 공주출신이고 서울대 경제학과 동문이다. 심 대표는 이미 세 번의 도지사 선거와 이번 보궐선거를 통해 뜨겁게 정치적으로 불가마 속을 거쳐 왔다.

정 전 총장은 그와 같은 정치적 단련은 겪지 않았지만 지금 범여권에서 가장 많은 러브 콜을 받고 있는 소위 '정운찬 대망론'에 서 있다.

심지어 지난주, 열린우리당 박상돈 의원 등 충청출신 의원이 중심이 되어 정 전 총장의 정치적 지원조직을 탄생시켜 주목되고 있다. 이 모임에 무소속 권선택 의원도 참여했고 1000명 정도의 많은 인사들이 모였다.

어쨌든 4·25보궐선거에서 DJ의 힘을 실감케 한 김홍업씨와 심대평 대표가 등장함으로써 호남 + 충청의 입맛 당기는 전선의 가능을 범여권에 보여주었지만 또 다른 정치적 등거리에서는 심대평 대표와 정운찬 전 총장이 충청권 맹주자리를 놓고 어떤 양상을 보일지 관심사다.

두 사람은 경쟁자일 수 있고 동반자 일 수도 있다. 두 사람의 판짜기에 따라 대전발 정치개편도 가능한 것이다.

고작 충청도가 킹메이커 역할을 할 수도 있고 킹이 될 수도 있다. 이번 선거양상을 과도하게 해석하고 흥분해서도 안되며 냉정하게 판짜기에 들어가야 한다. 킹메이커였던 JP가 충청인의 뜨거운 지원을 받았음에도 그 어느 날 충청인들로부터 외면당한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

말없이 은근히 무서운 게 충청도 민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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