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한국인으로서 도지사를 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한국인 도지사가 부임하게 되면 해괴한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예를 들면 충남 관1호차는 일본인 경찰부장이 타고 다녔고 충남 관2호차는 한국인 도지사가 탔다. (그때는 경찰이 차량 번호를 부여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해괴한 현상을 깨뜨려 버린 사람이 이범익(李範益) 지사.

충남 천안출신의 이 지사는 1935년 2월 20일 충남도에 부임했는데 그날 오후 도청에서 퇴근하며 당시 다까오라고 하는 경무부장에게 함께 퇴근하자고 했다. 영문도 모른 다까오 경무부장이 현관으로 나왔다.

그러자 충남 관2호인 도지사차가 맨 앞에 그리고 그 뒤에 충남 관1호인 경무부장의 차가 섰다. 이때 도지사가 운전사에게 호통을 쳤다.

"관1호차가 맨 앞에 서야지 2호차가 앞에 서면 되느냐! 자, 경무부장! 먼저 출발하시오."

순간 다까오 경무부장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지사에게 먼저 출발할 것을 권유 했다. 하지만 지사는 천연스럽게 "그러면 내 차는 충남 관0호로 해 주시오!" 하고 말했다. 물론 0호는 번호판에 없다. 할 수 없이 경무부장은 충남도지사 승용차에 1번 번호판을 달고 자신은 2번으로 물러 났다.

뿐만 아니라 이 지사는 대전역 앞에 있던 한국인에 콧대 높은 일본인 백화점(미나까이)을 영업정지 시키고 충남 여성을 무시하여 여성교육기관 설립을 기피한 조선총독과 담판을 벌여 지금의 대전여자고등학교를 설립하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요즘 이완구(李完九) 지사의 행동을 보면 이범익 지사가 떠오른다.

중앙정부의 거대한 벽에 부딪히면서 충남 현안문제에 담판을 벌이고 '지사로서 나도 생각이 있다'며 으름장을 놓는 것도 비슷하다.

왜 전라도의 새만금사업은 되고 18년째 표류하는 충남의 장항산업단지는 그렇게 도민들이 갈구하는데도 안되는가?

왜 국방대학은 충남이 요구하는 대로 논산으로 가지 않고 행정도시로 들어가려고만 하는가? 이 때문에 그는 쉴 새 없이 중앙부처를 뛰어 다니며 "나에게 내일은 없다"고 모종의 정치적 결단까지 암시하고 있다. 정말 이제는 과거처럼 중앙에서 밀면 고분 고분 따라가는 충남, 그리고 '이완구'는 아니라는 것이다. 같은 당 대선주자 이명박 전서울시장이 장항산업단지에 화끈한 입장을 보이지 않자 서슴없이 대들 정도다.

또 있다. 부여의 백제역사재현단지.

최근 이 일대를 돌아본 이완구 지사는 가슴이 답답했다.

"한마디로 이것이 역사 드라마 촬영 세트장이지 어떻게 백제역사의 재현장으로 사람들을 끌 수 있겠습니까?"

이 지사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할지 눈덩이처럼 쌓일 적자 경영을 생각하며 잠을 설친다고 했다.

이 지사는 정치적 후원 없이 외로운 싸움을 벌이는 것 같다.

심지어 유행처럼 번지는 무능공무원 솎아내기의 공무원 퇴출에서도 타 시·도지사와 다른 방법을 택하고 있다. 무조건 몇%의 '계량화'된 강제 퇴출이 아닌, 그리고 하위직 중심이 아닌 고위직 중심의 연말검증제도를 택한 것이다. 도청 공무원들은 사기가 살아나고 고위직은 긴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지사는 외자유치를 위해 해외를 뛰며 경기도보다도 많은 실적을 올리고 있다. 그래도 오늘 새벽 또 해외로 떠났다.

과거 어느 국무총리는 '막힌 곳을 뚫는 총리가 되겠다' 고 도전했으나 도중에 주저앉고 말았다. 과연 이지사는 이렇게 많은 충남의 막힌 곳을 어떻게 뚫고 큰 꿈을 가꾸어 나아갈 것인지 관심이 크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