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하(1958~ )

새들의 가슴을 밟고
나뭇잎은 진다

허공의 벼랑을 타고
새들이 날아간 후,

또 하나의 허공이 열리고
그곳을 따라서
나뭇잎은 날아간다

허공을 열어보니
나뭇잎이 쌓여 있다

새들이 날아간 쪽으로
나뭇가지는,
창을 연다

이 시에는 이미지 허공이 등장하고 있다. 이때의 허공은 일차적으로 우리에게 존재의 터를 제공하는 의미가 있다. 허공은 무(無)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무 그 자체로서 유(有)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허공은 무로서 유를 안고 있는 형상인 셈이다. 이는 인식의 전환으로서 역설적 표현이기도 하다. 또한 허공은 이중적이기도 한데, 텅 비어 있으면서 꽉 차 있는 것이다. 즉 무의 공존과 동시성을 의미한다. 허공을 제재로 하여 이 시는 유와 무, 상승과 하강 두 힘의 작용을 통한 존재의 비상(飛翔)과 추락의 국면에 연결되어 있다. 시에서 상승과 하강 이 두 힘의 작용에 의해 존재하는, 비스듬히 날 수밖에 없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 생의 실존이라는 사실을 형상화하였다.

허공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그 누구의 영역도 절대 아니다. 그래서 내가 그것을 크게 아우르며 더 넓게 원을 그려 수용한다면 그건 바로 나의 것이 된다. 그것은 원을 크게 그리면 그릴수록 그만큼 더 넓은 영역으로 내게 다가온다. 이렇듯 우리에겐 나의 의지에 따라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지는 영역이 있다. 그래서 내가 아무리 크게 원을 그려 나의 것으로 소유해도, 그것은 결코 누구의 것을 빼앗는 게 아니다. 또 그것은 우리가 욕심을 부리는 게 절대 아니다. 그러한 행위는 결코 남에게 해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득이 된다. 그것은 그만큼 우리의 정신세계를 확장시켜 더 풍요롭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한때 이런 것을 ‘허공이론’이라 이름 붙였던 적 있다.

김완하(시인·시와정신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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