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애 미술사칼럼니스트

렘브란트는 서양미술사 전체를 통틀어 10위권 안에 드는 위대한 화가다. 그의 위대성은 빛의 속성인 밝고 어두움을 활용하여 관람자에게 극적인 감동을 준다는 것으로, 우리가 그를 빛의 마술사 또는 영혼의 화가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렘브란트의 빛은 여느 화가들과는 달리 태양 광원에서 오는 직접적인 빛이 아닌 정신세계에서 흘러나오는 인공적인 빛이다. 그는 이 빛으로 자신의 심리적 통찰력을 보여주기도 하고, 욕망을 잠재우기도 한다.

렘브란트가 활동했던 17세기 네덜란드는 국제 경제와 금융, 무역의 중심지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로, 황금시대(Golden Age)였다. 동인도회사를 통해 동서양 무역권을 장악한 상인 계급도 탄생했다. 큰 돈을 번 상인들은 그들의 부와 명예를 과시하기 왕과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초상화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당연히 당시 최고의 화가에게 의뢰했고, 렘브란트도 그중의 한 명이었다.

탄탄대로를 달리던 렘브란트는 성공의 대가로 호화로운 삶을 누리고 있었지만, 멈추지 않는 회화적 실험 정신은 화가의 인생을 내리막길로 안내했다.

멈추지 않는 회화적 실험 정신은 세속적인 상인의 취향과는 점점 멀어졌다. 구매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고품격의 그림은 주문이 줄어들면서 그는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아내도, 자신을 돌봐주던 헨드리케라는 가정부 겸 동거녀도 죽었고, 외아들마저 죽었다. 그의 곁에는 아무런 보탬도 주지 못하는 며느리만 남았다.

이런 상황은 그의 자화상에 잘 나타나 있다. 젊은 시절의 의욕과 자신감, 고귀함은 사라지고, 겸손과 체념으로 채워진 무덤덤한 모습으로 변했다.

단출한 외투에 꽉 다문 입술, 다소곳이 모은 두 손은 허용과 화려함을 벗어던지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자신의 삶을 인정하는 듯하다.

그러나 개인적인 비극과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삶을 포기하거나 완전히 지쳐버린 모습은 아니다. 강한 붓 자국은 세상을 힘겹게 살아온 삶의 두께처럼 느껴진다. 몰락을 경험한 노년기의 렘브란트는 새로운 차원의 정신세계를 작품으로 승화시켰던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받아들인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저 담담한 표정은 세속의 모든 걸 초월하고 넘어선 달관의 경지 즉 영혼의 세계를 제시하고 있는 듯하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단어가 있다.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 ‘송가’에 처음 등장한다. 그 뜻은 ‘내일은 믿지 마라. 오늘을 즐겨라’이다. 로마의 초대황제 옥타비아누스도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를 맞이하면서 과거와 마찬가지로 미래는 인간이 아닌 신의 영역이니, 현재를 즐기고 집중하라는 뜻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인간이 신의 영역인 미래의 창고를 걱정과 불안으로 채우려는 것은 일종의 욕심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작가는 탄생하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진다고 한다. 렘브란트는 불우하고 어려운 경우에도 화가로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했고, 예술로서 삶을 승화시켰다. 빛의 화가, 내면의 화가, 자아를 성찰한 화가의 타이틀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톨스토이가 기자와 했던 인터뷰가 떠오른다. 요즈음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냐는 기자의 질문에, 중요한 일은 이 인터뷰이고, 중요한 사람은 내 앞에 있는 당신이라고 톨스토이는 답했다.

‘지금 여기’만이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충실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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