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완수(1967~ )

아이클릭아트 제공. 
아이클릭아트 제공. 

창 열고 바라보는 봄 바다는 고양이,
저 혼자 부딪치며 살아온 목숨여서
오늘도 조선 매화를 파도 위에 그린다

활짝 핀 공작 날개 흉내 낸 여름 바다,
어느 문중 휘감은 대나무 뿌리처럼
푸르고 깊은 가문을 댓잎으로 상감한다

발굽도 닳아버려 혼자 우는 가을 바다,
멀리멀리 떠나가는 비단 같은 노을길을
갈매기 수평선 멀리 지평선을 물고 간다

폭설을 삼켜버린 캄캄한 겨울 바다,
천길 어둠 밀어내고 동살로 여는 아침
부스스 잠 깬 고라니 동백숲에 숨어든다

올해의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한 시조다. 고완수 시인. 보령 출생. 이미 시를 써서 몇권의 시집을 낸 바 있다. 언제 또 시조를 연마했는지 2024 신춘문예를 통해 최고의 관문으로 등단하였다. 당선 소감에 스스로 한 사람이라도 울릴 수 있는 시조 작품을 남기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소박한 소회를 담았다. 그러나 진정 한 사람을 울린다면 그건 만인이 울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이는 결코 만만치 않은 포부라 하겠다. 심사평에서 바다의 봄 여름 가을 겨울 풍경의 묘사능력이 탁월하며 깊은 사유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하는 마력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전통 한국화를 감상할 때 흔히 느끼게 되는 고전적 미감 같은 여운이라 덧붙였다. 당선자에게 고요한 사색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하는 또 하나의 개성으로 한국 시조의 내일을 열어달라고 당부했다.

2016년 UC 버클리에서 연구년 보낼 때 생활하던 라피엣(Lafayette) 부근의 ‘어덜트 스쿨’(Adult school)에 가서 ‘하이쿠 앤 단카 포에트리’(Haiku & Danka Poetry) 강의를 들었다. 미국의 시니어들이 30여 명 모여 각자가 쓴 하이쿠를 합평하며 그 미묘한 세계에 빠져들고 있었다. 강사는 80대 중반의 Jerry Boll 이라는 남성 하이쿠이스트(Haikuist)였다. 한국에서 온 시인이라 말하고 한국문학에 대해 설명을 하려 온 힘을 다하는 나에게 그가 말했다. "시조?". 아, 그때 나는 우리가 얼마나 시조를 멀리해왔는가를 절실하게 느꼈다. 김완하(시인·시와정신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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