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준(1956 ~ )

아이클릭아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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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동백 꽃망울

모지락스럽게 입술 깨물며

아직 단꿈 젖어 있어

두터운 외투

걸치기도 벗기도 애매한 이 계절에

그끄제 내린 목화송이 같은 함박눈

벌써 자국 없이 물크러져 질척이네

부푼 동백꽃망울 살포시 귀 기울이면

겨울바람만 핥던 버석대는 줄기마다

땅속 깊이 퍼 올리는 물소리

자분자분 들려오네

달포 지나면

깊은 잠 깨운 봄꽃 군단 따라

화사하고 아린 동백꽃

미친 불길 휩싸여 벙싯 피어나겠지

꽃그늘 타고 떠오르는 어느 느낌씨

딱 그랬지

눈부신 절정에서 울켝울컥 생피 토하며

마지막 유서 쓰듯

탐스럽게 피워 올려

툭툭 목을 꺾는 동백꽃도

내 사랑도

그토록

쓰린 가슴도 눈물겹게 흘러가겠지

그때쯤

동백꽃 보려 선운사로 다시 가야겠네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은 일러 아직 피지 않고 막걸리 집 여인 육자배기 속에 지난해 것만 상기도 남아 있다고 미당은 노래했다. 이후 동백은 무수히 시인들의 시를 낳고 이어서 시는 또 수많은 시를 낳고 있다. 동백으로 시를 쓰지 않은 시인 있어도 한편만 쓴 시인은 없다 할지 모른다. 하여 시인도 선운사 동백에 깊이 꽂힌 듯. 시인은 선운사에 가서 아직 모지락스레 입술 깨문 동백 꽃망울이나 보다가. 또 부푼 동백 꽃망울에 다가가 살포시 귀 기울여보다가. 동백은 아직 단꿈에나 젖어 있다고. 그러나 동백은 이미 지난 가을부터 꽃망울 맺어 피고 있는 중이다. 세상 모든 꽃 그러하듯 우리가 동백이 피었다 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봄이 와서 동백이 꽃피는 게 아니다. 동백이 꽃피어 봄은 오는 것이다. 어쩌면 언제나 동백은 우리 마음에 먼저 피는지 모른다. 그 다음 선운사 동백도 따라서 피어나는 것. 하여 시인은 달포 지나면 깊은 잠 깨운 봄꽃 군단을 이끌며 화사하고 아린 동백도 붉게 피어 벙싯거릴 거라 한다. 툭툭 목을 꺾는 동백도 사랑도 그토록 쓰린 가슴도 눈물겹게 흘러갈 것이라 했다. 그러니 그때쯤 다시 동백꽃 보러 선운사엘 가야겠다고. 그렇다. 시인의 마음속에는 벌써 동백이 벙글어 가득 차 있다. 김완하(시인·시와정신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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