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텍 명예교수

전통적 가족주의가 가족을 해체하고 있다. 도전적으로 들리는 이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대체로 고개를 갸우뚱거릴 게 틀림없다. 우리 문화에서는 모든 게 가족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개인화의 물결이 드세고 개인주의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의 영혼을 잠식하고 있어도 가족주의는 여전히 끈질기게 우리의 삶과 사회를 통제한다. 식당에 가면 ‘이모’가 있고, 사랑하는 사람은 곧 ‘오빠’가 된다. 우리는 사람들의 관계를 가족의 관점에서 구성하려는 성향이 있다. 조금만 친해지면 나이의 서열에 따라 형이나 누나 그리고 동생으로 나뉜다. 사회는 이렇게 확대된 가족과 모르는 낯선 사람으로 구분된다. 공익과 공동선을 추구하는 국가마저 ‘큰 가족’으로 생각하니 정치적 지도자가 가부장처럼 군림하는 게 당연해 보인다. 유교 문화와 역사를 통해 형성된 이러한 성향은 일종의 제2의 본성처럼 원하건 원치 않건 디폴트로 작동한다.

설날과 추석 같은 명절은 가족의 가치를 보전함으로써 가족 구성원의 유대와 친밀감을 강화하는 축제였다. 내가 여기서 과거 시제를 사용한 것은 명절 풍속도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가족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가? 한때 우리는 서양의 개인주의를 비난하면서 우리의 고유한 가족주의를 자랑스럽게 내세웠다. 서양인들은 합리적이고 계산적이지만, 우리는 끈끈한 정이 있다고 의기양양하게 뽐내곤 하였다. 문화적으로 몽매한 이 말을 지금은 누구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지만, 우리가 서양인보다 더 가족적이라고 믿는 편견은 여전히 강하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이미 변화한 현실과 부딪히면 맥을 못 춘다. 가족은 이미 붕괴하고 소멸하기 때문이다.

혹시 이번 설날도 생각과 행동이 따로 논 심리전쟁의 장은 아니었을까? 결혼 얘기는 하지 않으리라는 작심에도 불구하고 속내가 드러나는 질문 같지 않은 질문으로 분위기를 불편하게 만들거나 기분 좋지 않은 싸움으로 끝나지 않았는가. 결혼은 언제 하니? 얘는 가질 거니? 이런 질문은 언제부터인지 이미 타부가 되었다.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는 현실이다. 2023년도 여성가족부 통계에 의하면 1인 가구는 2022년도 34.5%에 달하고, 그것도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으면 가족이 붕괴하는 것은 당연하다.

‘가족’이 시나브로 사라지는데도 ‘가족주의’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역설이다. 가족의 해체와 붕괴는 현재의 현실이고, 가족주의는 과거의 유산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많은 지역에서는 결혼과 가족에 관한 법률과 사회적 관습이 새로운 현실에 뒤처져 있다. 변화한 현실에 맞게 법률과 제도를 개혁해야 하는데도 정부는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는 재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으로만 대응한다. 전통적인 가족을 되살려 인구 감소를 되돌리려는 핵가족 정책은 실패하였다. 변화된 사회환경에서 아이를 낳고 자녀를 양육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을 제거하려면, 우리는 가족에 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전통적인 가족 개념은 역사적으로 결혼한 이성애 부부와 그들의 생물학적 자녀가 한 지붕 아래 함께 사는 핵가족 구조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가족은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관계에 있는 집단이다. 이성이 아니면 결혼하지 못하고, 결혼하지 않으면 가족을 만들지 못한다. 21세기의 시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개인화 추세와 개인적 성취에 대한 강조가 높아지면서 가족 구조가 다양해졌다. 주목할만한 변화 중 하나는 편부모 가구, 자녀가 있는 동성 커플, 재혼을 통한 복합가족과 혼합가족 등 비전통적인 가족 형태의 증가이다. 보조 생식 기술의 발전과 대안적인 가족 형성 방법에 대한 사회적 태도의 변화로 인해 가족 구성의 범위가 더욱 넓어졌다. 입양, 대리모, 공동 양육 방식이 점점 더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생물학적 친자 관계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도 흔들리고 있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이처럼 다양한 대안적 가족 형태가 출현하고, 정부도 다양한 가족 형태를 수용하여 현대 가족의 변화하는 요구에 부응하는 유연한 정책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문제는 사회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가족 개념과 가족 관계의 경직된 구조이다. 동아시아 국가에서도 가족의 다양성은 증대하고 있다. 맞벌이 가구가 늘어나고 이혼과 재혼도 늘어나고 있다. 대만에서는 동성 결혼과 동성 커플의 자녀 입양도 합법화됐다. 부유한 국가들로 구성된 OECD에서는 현재 40% 이상의 자녀가 혼외 출산으로 태어나는데 한국, 일본, 대만에서는 그 비율이 5% 미만이다. 이들 국가에서의 출산율 하락은 주로 결혼 감소의 결과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적 가족만 고집하는 가족주의는 오히려 가족의 해체를 부추긴다.

우리에게 결혼과 가족은 더 이상 필수가 아니라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달성할 수 있는 일이 되어가고 있다. 가족의 해체를 개인주의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사회적 불안과 갈등으로 초래된 가족 관계의 변화는 결코 개인의 승리로 이어지지 않는다. 왜 개인주의가 우리보다 먼저 발전하여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 서구에서는 합계출산율이 우리보다 훨씬 더 높은 것인가? 가족을 중시하는 것은 어느 문화나 똑같지만, 가족주의가 우리에게는 ‘가부장제’라는 제도와 동일시된 것이 커다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가 전통적 가족을 강조하면 할수록 결혼과 출산을 어렵게 만드는 사회 구조는 깨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혼과 출산이 이미 개인의 선택 문제가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결혼을 이성애 커플로 제한한다면, 전통적 성 역할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한국의 낮은 출산율이 페미니즘 탓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전적으로 여성의 책임이라는 전통적인 생각을 고수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아이를 낳도록 하려면 개인이 그런 결정을 쉽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미혼 커플, 한 부모, 심지어 동성 커플도 가족을 꾸릴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까지 여성들은 아내와 어머니라는 전통적 역할에 계속해서 반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가족의 변화하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전통적 가족주의가 오히려 가족 해체의 주범이라는 점을 인식하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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