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클릭아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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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투데이 김윤주 기자] ☞추석보다 ‘설날’이 좋았다. 이유는 딱 하나 ‘세뱃돈’ 때문이었다. 절하면 봉투가 ‘뚝딱’ 나왔다. 철이 없었다. 어른들이 건네는 봉투가 마냥 좋았다. 그 하얀 봉투가 한숨에 절어 하얗게 센 것임을 몰랐다. 어릴 땐 세뱃돈마저 경쟁이었다. 형제·사촌끼리도 서로의 액수를 쟀다. 설 연휴 이후 학교를 가도 그랬다. 친구들끼리 "너 세뱃돈 얼마나 받았어"가 공통 질문이었다. 반에서 많이 받은 순위를 나열하기도 했다. 그땐 그 세뱃돈의 액수가 곧 ‘자존심’이었다.

☞그래서 못마땅했다. 할머니 댁이 있던 동네는 우리 성씨의 집성촌(集姓村) 이었다. 옆집·앞집·뒷집 모두가 일가(一家)였다. 그러다 보니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설 인사를 하는 것이 당연했다. 설날엔 항상 그렇게 ‘인사 원정대’가 꾸려졌다. 문제는 난 한 번도 그 명단에 포함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인사 원정대’는 늘 남자들로만 꾸려졌다. 그게 당연했고 또 아무렇지 않은 일이었다. 진짜 문제는 원정대에 속한 오빠·사촌 동생의 ‘세뱃돈’이었다. 그들은 동네 어르신께 세뱃돈을 더 받아 부(富)를 축적했다. 징징대는 여자 형제들에게도 ‘일부’ 나눠주긴 했으나 정말 일부였다. 그렇게 세뱃돈 격차가 났다. 분한 마음에 원정대를 따라가겠다고 몇 번 떼쓰기도 했다. 그땐 그저 세뱃돈에 울고 웃던 ‘애송이’였다.

☞지금은 어른인데도 운다. 명절은 곧 돈이다. 부모님껜 용돈을 드리고, 아이들에겐 세뱃돈을 줘야 한다. 부모님은 여전히 다 큰 자식에게도 세뱃돈을 챙겨주신다. 손주에게도 봉투를 건네신다. 그러다 보니 드리는 것보다 받아올 때가 더 많다. 부모님이 주신 봉투엔 언제나 빳빳한 신권이 들어있다. 자식의 앞날을 기원하며 ‘새 돈’을 넣었을 주름진 손을 생각하면 뭔가 울컥한다. ‘내년엔 용돈을 더 많이 드리고 싶다’는 도돌이표 다짐만 할 뿐이다.

☞어렵긴 어려운가 보다. 얼마 전, ‘네이트 Q’가 성인 3892명을 대상으로 적정 세뱃돈을 묻는 설문 조사를 했다. 그 결과 42%(1668명)가 ‘서로 부담인 만큼 안 주고 안 받는 것’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고물가 시대를 대변한 답변이다. 또 이 비슷한 수치로 42%(1653명)은 ‘5만 원’이 적절하다고 답했다. 사실 이 ‘5만 원’이라는 답변엔 2009년에 출시된 ‘5만 원권’이 한몫했다. 만 원을 주는 것이 적다 싶으면 5만 원을 줄 수밖에 없다. 3만 원을 주고 싶어도 쪼잔해 보일까 눈치가 보인다. 그렇다 보니 5만 원으로 급격히 점프 뛸 수밖에 없다. 물가가 오른 점도 원인 중 하나다. 올 설 세뱃돈 준비금은 1인당 평균 52만 원이라고 한다. 쉬어서 또 가족과 만나서 행복하지만…지갑은 올 ‘설’도 ‘설설’ 긴다.

김윤주 뉴스플랫폼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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