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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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정부는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사업을 최대 2년 이상 앞당기기로 했다. 대통령 윤석열이 "250만 채 주택공급에 못지않게 주택에 따른 교통연결망을 제공하는 것을 국가의 최우선 과제로 해야 한다"며 "모든 부처가 GTX 조기 개통에 적극 협력하라"고 지시한 덕분이다. 화끈해서 좋다.

대통령은 지난 25일 의정부시청에서 열린 여섯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모두발언에서 "당장 올해부터 본격적인 GTX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A선부터 F선까지 전부 완공되면 수도권에서 서울 도심까지 30분 대로 다닐 수 있게 된다"며 "이러한 좋은 교통 혜택은 수도권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지방에서도 누릴 수 있도록 전국 대도시로 GTX 서비스를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방도 그렇게 배려해 주겠다니 고마운 말씀이다. GTX로 아산·춘천·원주까지 갈 수 있게 된다니 참 좋은 세상이다. 부·울·경, 대구·경북, 대전·세종·충청, 광주·전남 등 총 4개 도시권에는 최고시속 180km급의 x-TX(광역급행철도) 프로젝트를 추진할 것이라고 하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렇긴 한데 ‘수도권 30분대 출퇴근 시대’가 마냥 좋기만 한 건지, ‘나쁨’이 ‘좋음’을 압도할 정도의 부작용이 있는 건 아닌지 제대로 따져본 걸까? 문제는 지역균형발전이다. GTX 이전에 KTX가 있었다. 한겨레 선임기자 이춘재는 2022년 2월 KTX와 지역균형발전 관련 연구결과를 종합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KTX는 애초 고속화를 통해 지역균형발전을 달성하겠다는 목표와 달리 지역 간 격차를 오히려 심화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KTX 개통 이후 지방 중소도시의 지역내총생산과 인구는 감소하고 대도시는 증가하는 ‘빨대효과’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고속철도가 만든 ‘전국 1일생활권’의 수혜자는 결국 서울시민이었다."

GTX는 다를까? 한겨레 경제에디터 김회승은 이미 2021년 7월 "GTX는 지방 인구와 경제력이 수도권에 더 강력히 흡수되는 빨대 효과를 부를 공산이 크다"며 이런 전망을 내놓았다. "수도권 진입 수요는 더 늘어날 것이고, GTX 노선을 따라 줄줄이 더 많은 아파트가 들어서고, 서울 도심과 강남은 더 붐빌 것이다. 지금도 전 국토의 12% 남짓한 공간에 국민 절반이 모여 산다....지방 소멸은 더 빨라질 것이다." 물론 이는 현실이 되었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박종성은 2021년 9월 "GTX는 수도권 집중을 가속화시키는 급행열차"라며 문재인 정부의 위선을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는 수도권과 지방 간의 균형발전을 역설했다. (그러나) GTX 노선 연장을 통해 거대 수도권 공동체 탄생을 부채질한 게 이번 정부에서 일어난 일이다....좌초될 GTX 노선을 살리는 데 들인 노력만큼 소외받는 지방을 위해 노력한 흔적은 무엇인가."

2022년 대선을 맞아 거대 양당의 두 후보는 마치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처럼 신나게 경쟁적으로 ‘GTX 확장’ 그림을 그려 나갔다. 그들은 수도권 전역을 평균 30분대 생활권으로 연결하는 ‘GTX 혁명’이라는 꿈을 이루겠다는 점에선 똑같았다. 나는 당시 두 후보의 공약을 비판하는 글을 썼지만, 대선이 끝난지 한달 후인 4월 9일부터 방영된 TV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애청하면서 수도권 주민들의 출퇴근 고통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밝을 때 퇴근했는데, 밤이야. 저녁이 없어"라는 대사는 그런 출퇴근 전쟁을 하면서 살아가는 수도권 주민들이 불쌍하다는 생각마저 하게 만들었다. "걔가 경기도를 보고 뭐랬는 줄 아냐? 경기도는 계란 흰자 같대. 서울을 감싸고 있는 계란 흰자....하고많은 동네 중에 왜 계란 흰자에 태어나갖고"라는 대사도 나로 하여금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에 사는 ‘우월감’을 느끼게 만들기에 족했다.

자, 사정이 이와 같으니 우리 모두 솔직하게 이야길 해보자. 대선 후보들이, 아니 어떤 정부건, 수백만 수도권 주민들의 출퇴근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GTX 혁명’을 부르짖는 건 당연하거니와 칭찬받을 일일 게다. 그런데 왜 일자리는 서울에만 집중돼 있어야 한다는 건지 그걸 도무지 모르겠다. 134조 원의 돈이 들어간다는 ‘GTX 혁명’이 완성되면 일자리의 서울 집중은 심화되고 또 교통난이 발생할텐데, 그 돈의 일부나마 다른 지역 일자리를 위해 쓰면 무슨 큰 일이 나는가?

지방민들이 피해를 좀 보더라도 나라가 잘 된다면, 지난 세월 그래왔듯이 또 참을 수도 있다. 그런데 새로운 문제가 나타났다. 저출산이 불러 온 ‘지방소멸’과 그에 따른 ‘서울멸종’의 위기다. 지방만 죽는 게 아니라 서울, 아니 온 나라가 죽게 생겼다. 생존과 성공의 기회가 서울에 집중되면서 전국의 청년이 몰려드는 서울은 ‘초경쟁’의 아수라장이 되면서 결혼과 출산을 미친 짓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2022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세계 최저인 0.78이었을 때 서울은 0.59를 기록함으로써 ‘서울공화국’ 체제가 ‘서울멸종’과 ‘국가소멸’ 위기의 주범임을 입증했다.

차라리 망할 때 망하더라도 우리 모두 이런 식으로 살아가자고 합의하면 화낼 일은 없을 게다. 그런데 역대 정권들은 기존 서울공화국 체제의 길을 따라가는 이른바 ‘경로의존’에 충실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입으로는 지역균형발전을 이루겠다고 큰소리를 치는 두 얼굴을 보여왔다. 이제 더 이상 그러지 말자. 희망고문도 정도 문제지 이런 국민사기극은 국민성마저 망가뜨릴 수 있으니 말이다.

앞으론 대선 후보들도 왜 서울멸종과 국가소멸 위기를 막기 어려운지 그걸 솔직하게 말해주면 좋겠다. 반세기 넘는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서울공화국의 구조를 5년짜리 정권이 바꿀 수 있나? 교육정책, 산업정책, 교통정책, 고용정책, 문화정책, 지역균형발전정책은 다 분리돼 있어 따로 놀고 있는데, 그걸 무슨 수로 통합시켜 지역균형발전을 이룰 수 있나? 서울 인구 집중의 최대 요인 중 하나인 ‘명문대의 서울 집중’을 바꿀 수 있나? 자식을 서울로 보낸 지방민들이 잠재적인 서울시민의 정서를 갖는 걸 막을 수 있나? 이런 솔직한 문제제기를 듣고 싶다. 결코 냉소나 비아냥이 아니다. 그렇게 해야 진정성 있는 논의와 대안도 가능할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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