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렬 청주대·한국음식인문학연구원장

모처럼 만난 지인과 냉면을 먹기로 했다.

추운 겨울에 웬 냉면이냐고 할지 모르나 냉면이 원래 추운 지방에서 한겨울 얼음 동동 뜬 동치미 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던 데서 시작된 음식이니 동지 섣달에 먹는 냉면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냉면 매니아를 자처하는 우리는 가늘고 쫄깃한 면발에 달콤새큼한 육수가 어우러지는 시중의 일반적인 냉면보다는 메밀로 뽑아 투박한 면발을 깔끔한 육수에 만 슴슴한 맛의 이북식 냉면을 좋아한다. 메밀의 향과 식감 그리고 담박한 육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침 청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정통 평양냉면으로 꽤 알려진 면옥이 있는데 시쳇말로 뷰도 괜찮고 무엇보다 마당이 넓어 주차 문제도 해결되는 집이라 고민 없이 친구의 차를 함께 타고 이동했다. 평일인 데다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주차 공간은 충분히 여유가 있었으므로 빈자리에 차를 세우고는 식당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누군가 소리를 치며 달려왔다. 주차관리인인데 차를 다시 세워야 하니 키를 달란다. 다시 확인 해 봐도 우리 차는 제자리에 정확히 세워져 있어 "괜찮다"며 들어가려는데 앞을 가로막으며 키를 내 놓으라 윽박지른다. 거기에다 나갈 때는 3000원의 대리주차비까지 내야 한단다. 다시 "차를 제자리에 잘 세웠으니 대리주차 서비스가 필요 없다"라고 얘기했더니 대뜸 "싫으면 차를 빼서 나가라"는 구박이 돌아온다. 실랑이 끝에 결국 식당 주인을 불러 "당신네 식당에 오는 손님이 주차장에 스스로 주차를 할 수 있는데 강제로 주차를 맡기고 돈까지 내도록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졌으나 주인은 "주차장을 저 사람들에게 임대했으니 나는 모른다"고 하며 자리를 피해 버린다.

원래 대리주차는 식당이나 호텔 등에서 자기 집을 찾는 손님 중에 몸이 불편하거나 운전이 서툴거나 급한 사정이 있는 고객을 위해 주차를 대신해 주고 손님은 감사의 표시로 적당한 금액의 답례를 하는 발렛파킹이라는 서비스로 서구에서 들어 온 자동차문화의 하나이다.

우리나라도 처음엔 같은 형태의 서비스로 정착되는 듯하더니 언제부터인가 식당 주인들이 주차장 관리를 임대했다는 핑계로 주차장에서 발생하는 사고 책임을 회피하거나 부대 수입을 얻는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모양이다.

말로는 고객이라 하면서 실제로는 봉으로 보는 것은 아닌지 왠지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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