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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투데이 김윤주 기자] ☞초등학생 때 상을 받았다. 무려 ‘그림상’이었다. 미술 열등생이었기에 그 상의 의미는 남달랐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기억한다. 학생을 대상으로 한 ‘평화 통일 포스터·표어 공모’였다. 2000년 첫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어린 나조차 그 들뜬 분위기를 알고 있었다. 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손을 꼭 잡은 그림을 그렸다. 그 속에서 그 둘은 마주 보며 웃었다. 그들이 서있는 곳은 한반도였다. 어떠한 선이 그려져있지 않은 ‘하나의 한반도’였다. 그때 대북 정책은 ‘햇볕’이었다. 어린 난 뭣도 모른 채 그저 남북이 따뜻하길 바랐다. 그 당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원대(遠大)’ 한 것인지도 모른 채 ‘고대(苦待)’했다.

☞그 소원은 점차 희미해졌다. 그러다 완전히 접게 된 계기가 있었다. 중학생이던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가 열렸을 때다. 북한 응원단이 남한을 찾았다. 응원단은 모두 여성이었고 외모가 아름다운 것으로 화제가 됐다. 매스컴에선 연신 ‘미녀 응원단’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거기까진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버스로 이동하던 북한 응원단이 내리는 소동이 있었다. 그리곤 단체로 어디론가 달려갔다. 그들은 한 현수막에 멈춰 섰다. 그 현수막은 북측 선수단을 환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거기엔 응원 문구와 함께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악수 장면이 새겨져 있었다. 그게 문제였다. 그들은 “장군님이 비를 맞는다”· “어떻게 장군님을 나무에 걸어놓느냐”라며 울부짖었다. 그리곤 현수막을 철거해 고이 ‘모셔’ 버스에 탔다. 우리와 ‘다른’ 세상에 살았기에 보인 ‘다른’ 행동이었다. 하지만 달라도 너무 달랐다.

☞축구를 보다가도 이런 문제는 불쑥 튀어나왔다. 대학생 시절, 남사친(남자사람친구) 하나가 질문을 던졌다. 그는 “북한이랑 일본이랑 축구 경기를 해. 누굴 응원해야 해?”라고 물었다. 그때 국내 전반적으로 반일 감정이 있던 상황이었다. 그랬기에 내 대답은 “당연히 북한 아냐?”였다. 그러자 그는 “아니. 넌 군대를 안 다녀와서 그래. 우리 주적은 ‘북한’이야. 일본 응원해야지”라고 말했다. 군필자였던 그에겐 그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군 장병들의 고생을 알기에 할 말이 없었다. 군인·이산가족을 생각하면 ‘통일’이 너무나 필요했다. 하지만 ‘서로의 간극을 좁힐 수 있을까’는 늘 난제였다. 서로 다른 나라로 인정하되 왕래가 가능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다른 걸 떠나서 서로에게 총을 겨누지 않게 되길 바랐다.

☞하지만 지금 북한은 우리에게 ‘총’이 아닌 더한 것도 쏠 기세다. 그리고 연일 매서운 소리를 쏟아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통일·화해·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제거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또 경의선 파괴·대남기구 폐지를 지시했다. 이것이 김일성·김정일 유산일지라도 말이다. 김 위원장은 헌법에 대한민국을 ‘불변의 주적’으로 명기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50년 넘은 남북관계가 막 내릴 것으로 전망했다. 사실 이 정도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또 저러네’라고 치부하기엔 김 위원장의 말은 너무나도 섬뜩하다. ‘절친’ 푸틴 따라 전쟁이라도 하고 싶은 걸까. 얼마 전, 북한에서 전력난으로 기차 사고가 나서 주민 400여 명이 숨졌다고 한다. 전력(電力)도 없으면서 전력(戰力)을 논한다. 자국민들이 죽어가는데 ‘전쟁’만을 외치는 그가 무섭다.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 아니다. 평화를 깨는 그 누군가다.

김윤주 뉴스플랫폼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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