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윤(1980~ )

아이클릭아트 제공. 
아이클릭아트 제공. 

누군가와 사랑하는 것은
때로 그림자밟기 놀이 같은 일

당신과 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차례를 바꾸어가며 술래가 되어
서로 그림자를 밟으러 쫓기도 하고

내 그림자를 밟히지 않으려고
길고 서늘한 나무 그늘 밑에 오래 숨었다가
해를 등지고 뒷모습을 보이며 달아나는 일

아주 맑은 날 밝은 눈으로 보아야
그림자를 볼 수 있지만
많은 날들이 흐리고 눈은 자꾸 어두워지지

당신과 내가 서로 맴도는 사이
날이 기울어가고 어스름이 밀려오면
가엾게도 두 그림자 모두 지워지거나
술래가 그만!을 외칠지도 모르는 일

그러나 내 그림자를 밟히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 것을 먼저 내어주어야만
둘 다 이길 수 있음을.

그러니까 어린 날 우리 골목에 모여 술래잡기 놀이하며 실은 사랑을 깨우쳐 왔던 게 아닌가. 어둠 속 숨어 있다 몰래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다가와 술래 등 뒤에 나타나 큰 소리로 이겼다 외치던 순간. 그때 어쩌면 술래는 숨어 있던 상대가 지치길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러나 어느새 술래는 숨는 위치가 되고. 또 숨었던 누군가 다시 술래가 되며 그렇게 서로의 역할극 이어갔다. 그러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생각하니 그처럼 소중하고 귀중한 야간자율학습이 있었을까. 모두 함께 하나가 되어 벌이던 축제의 밤.

그러다 우리 알게 되었지. 내 것을 먼저 내주어야 서로들 다 함께 이길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진정한 상생의 이치이자 원리라는 것을. 내 그림자 안에 함께 서서 당신의 그림자 내게 나누어주며 우리 서로를 안았을 때. 실은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나아가 우리 어둠에 있어야 빛을 볼 수 있고. 그림자 밟는다는 건 빛의 이면에 대하여 눈뜨는 일이라는 것을. 그동안 우리 벌여온 그림자밟기는 끝났는가. 이제 한 해 마감하고 새해를 맞아야 하는 때. 이제 술래가 숨고. 숨었던 누구는 다시 술래가 되고.

김완하(시인·시와정신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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