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재 이응노미술관 관장

여행은 일상에서의 탈출과 경험하지 못한 낯선 곳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이다. 때로는 여행을 통해 터닝포인트가 되기도 하며, 다시 떠날 수 있다는 희망은 오늘을 풍요롭게 할 수도 있다.

얼마 전 지인 부부는 3주간의 포르투갈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시월의 마지막 날에 리스본 강변을 걷고, 리스본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그림에 대한 소소한 발견, 신트라, 나자레, 파티마, 포르투 등 다양한 포르투갈의 도시를 보면서 그 짧은 여행 기간동안 한쪽으로는 한국의 풍경과 정서가 그리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살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면 그 심정은 완전히 다를 것이다.

이응노는 1956년 프랑스 평론가 자크 라센느의 초청을 받은 후 1958년 만 54세의 나이에 프랑스로 건너갔다. 박인경 여사에 의하면 ‘도착한 파리의 건물들이 새까만 했다’라고 말씀하셨다. 2차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되고 나무로 난방이나 생활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생경하고 낯선 도시였을 것이다.

아무리 몇몇 관계자에게 초대받아 갔어도 모든 걸 책임지는 조건은 아니었다.

파리에 정착한 이응노는 당시 프랑스 미술계의 흐름이었던 ‘앵포르멜(informel)’ 회화 양식을 흡수한 후 전통 필묵과 결합해 동양적 감수성이 가미된 새로운 추상을 창작했다. 1962년에는 ‘앵포르멜’ 운동을 견인했던 ‘폴 파케티 화랑’과 전속계약을 체결해 파리 창작기로 들어서게 된다.

이응노 탄생 120주년을 맞이해 현재 열린 ‘이응노, 동쪽에서 부는 바람, 서쪽에서 부는 바람’은 국립현대미술관과 이응노미술관이 공동 기획·협력해 마련한 전시다.

여기에 퐁피두 소장 ‘무제, 1962년 작’ 작품이 눈길을 끈다.

파리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에 제작한 그림이다. 그동안 해왔던 작품과는 전혀 다른 콜라주다.

정말 꼼꼼하게 조심조심 제작한 이응노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다.

작품을 대하면서 이응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관람자마다 다르게 느껴지겠지만 본인에게는 왠지 비장한 느낌이 든다.

여행과는 전혀 다른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칼을 갈고 있는듯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60여 점의 출품작 중 30여 작품이 국내 미공개작이라는 점 외에도 1958년 유럽 이주를 기점으로 그 이전과 이후의 작품을 함께 전시했다.

이응노의 한국적 뿌리와 유럽에서 받은 자극이 어떻게 충돌하고 융합하여 독자적인 작품으로 탄생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살기 위해 먼 여행을 떠난 이응노의 심정도 헤아려 보는 여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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