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식 충청남도 평생교육인재육성진흥원 원장

부모라면 첫 아이를 갖게 되었을 때의 기쁨과 설렘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정말 좋은 엄마 좋은 아빠가 되어 우리 아이를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로 키워야지 하는 기대와 다짐을 하게 된다.

하지만 곧 다가오는 만만치 않은 육아와 보육으로 힘겹게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부모가 모두 직장에 다닐 경우 육아에 지쳐 부모로서의 자녀 교육에 대한 생각을 정립할 새 없이 ‘어쩌다’ 부모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면 어린이집을 보내고 유치원을 보내고 학교를 보내야 하는 시간이 금세 다가온다. 자녀 교육에 대한 방향을 잃고 오히려 자녀가 하고 싶은 대로 끌려가거나, 동네 아줌마의 정보, 매스컴의 선전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기도 한다. 거기에 부모가 이루지 못한 꿈을 자녀를 통해 이루려는 심리가 작용해 자녀를 대학에 잘 보내는 것이 부모의 가장 중요한 역할로 왜곡하기도 한다.

이렇게 부모 스스로 좌충우돌하는 사이 자녀들은 부모도 원하지 않고 사회도 원하지 않은 ‘이상한 금쪽같은 아이’가 되어간다. 그리고 전통사회에서의 부모들의 의연한 모습, 존경스러운 모습을 갖추기가 어렵다. 모든 생활 장면에서 자녀를 마주하게 되고, 나의 모든 생활을 알고 있는 자녀에게 훌륭한 좋은 부모의 모습을 갖춘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녀의 기분과 욕구에 맞춰주는 교육, 사교육의 홍보, 옆집 엄마표 정보들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부모는 부모 나름대로 자녀교육에 대한 방향을 뚜렷하게 지니고 있어야 한다.

전통사회에서 우리 조상들은 이러한 자녀교육에 대한 부모의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했다. 그것을 4자로 표현한 것이 엄부자모(嚴父慈母)다. 엄부자모의 원칙이란 엄격한 아버지와 자상한 어머니를 의미한다.

그것이 꼭 아버지는 엄해야 한다는 의미보다 부모의 역할에 있어서 엄(嚴)함과 자애(慈愛)로움이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즈음 자녀가 올바로 성장하지 못하는 것을 가정교육에서 찾는다면 부모의 가정교육의 역할에 있어, 엄함이 사라지고 깊은 사랑이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엄(嚴)함이 없이 ‘오냐오냐’ 하면서도 잘해주려고만 할 때, 또는 격려함 없이 다그치기만 하는 양육의 태도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아이는 사회생활에 적응력이 약해 부모에 의존하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위축되고 불만으로 가득한 공격적인 사람이 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의 엄격함과 어머니의 자상함을 균형 있게 조화를 이뤄 아이에게 책임감과 독립성을 가르치면서도 동시에 사랑과 지지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엄한 꾸짖음과 함께 회초리도 마다하지 않았던 전통사회의 아버지들이 권위적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마음속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머금고 냉혹한 사회, 그리고 사회가 요구하는 예의범절을 몸에 익히도록 하기 위해 전통의 아버지는 그 역할을 감수했던 것이다.

자녀 마음의 상처가 될까 걱정이 되어 훈육을 아낄 때 사회에 나가서는 더 큰 상처와 난관을 겪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 부모는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리 자녀가 부모를 떠나 사회로 진출할 때 다가오는 많은 난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엄격함에서 오고, 그 난관을 이겨낼 수 있는 자신감은 언제나 품어주는 자애로움에서 생겨난다. 전통사회에서 가정교육의 원칙을 지켜낸 우리 선조들의 지혜에 다시 머리가 숙여진다.

오늘의 엄부자모(嚴父慈母)나 자부엄모(慈父嚴母)도 상관없으니 이젠 가정교육의 두 기둥을 바로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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