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균 ETRI 기술창업실 책임연구원

어느덧 계묘년이 마무리돼 가고 있다. 유독 올해는 국가적으로 무척 힘들었던 시기였다. 국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 고금리, 지정학적 갈등 등 글로벌 복합위기로 인해 국내외 경제뿐만 아니라 중소벤처기업에겐 더욱 더 혹독한 시기였던 것 같다.

지난주 필자가 몸 담고 있는 연구원에서 의미있는 행사가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2011년 정부출연연구기관 최초로 연구자 창업을 지원하는 ‘예비창업지원제도’를 통해 창업한 기업을 대상으로 ‘ETRI 연구원 창업기업 패밀리 데이’ 행사를 열었다. 50여개 창업기업 대표 및 임직원을 포함하여 100여명이 참석했다.

ETRI 연구자 창업은 2011년 이후 현재까지 82개사로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기관 전체 창업기업의 약 34%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까지 기업 생존율이 74%를 차지할 정도로 지속 가능한 성장이 확인되었다. 매출액, 고용창출, 기업가치 등 모든 면에서 우수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어 기술창업이야말로 우리 경제를 이끌고 갈 핵심 중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창업기업 대표님들은 자사 기업을 소개하는 1분 스피치 때, 수많은 애환과 고뇌를 얘기하면서 창업이라는 것이 결코 쉽지 않지만, 보람 역시 크다고 말했다. R&D 한 가지만을 집요하게 파고들던 연구자에서 복잡한 환경과 위험, 변화를 극복해야 하는 사업가로 변모했으니 몸과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대표님들이 이구동성으로 얘기한 것 중 공통된 분모는 연구원 내에서 느껴보지 못한 긴장감, 새로움, 흥분, 희열 그리고 책임감 등으로 인해 사업을 계속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ETRI를 제외한 출연연 기술창업 확산은 녹록지 않다는 의견이다. 연구성과가 비즈니스와는 거리가 좀 있기도 하거니와 과감한 도전을 응원해 주는 분위기도 아쉬운 부분이다.

필자는 출연연구기관의 연구자가 과감히 창업 전선에 도전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제언을 해본다. 첫째 각 기관별로 ‘예비창업지원제도’를 도입하여 법인설립 이전부터 체계적으로 사업준비를 할 수 있도록 지원시스템이 잘 구축될 필요가 있다. 아마도 출연연 최초의 예비창업지원제도 사례를 가지고 있는 ETRI를 보면, 그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3년 미만의 기술창업기업에 대한 성장지원책도 마련되어야 한다. 혹자는 기업에게 지나치게 많은 지원은 오히려 자생력을 약화시킨다는 견해도 있지만, 아무리 훌륭한 기술력을 가진 기업일지라도 창업 이후 곧바로 매출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져 줄 수는 없지만, 최소 요람에서 걸어 나올 때까지 지원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 최대 6년 창업휴직을 9년까지 늘릴 필요도 있다. 각 기관마다 차이는 있지만, 현재 벤처기업법이나 연구개발특구법에 소속 기관의 장의 허가를 받아 총 6년까지 휴직할 수 있다. 투자자 등 외부시각에서는 창업 휴직이나 겸직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 입장이다. 창업이라는 것이 배수의 진을 쳐도 어려운데, 돌아갈 자리 마련해 놓으면 제대로 창업이 되겠는가라는 시각이다. 하지만 9년까지 창업휴직을 늘리더라도 돌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 필자는 판단한다.

출연연 연구자가 창업에 나서면 돈맛을 보려는 속물로 보는 시각도 많지만, 기술혁신 생태계를 이끌고 갈 집단은 결국 기술을 잘 이해하고 활용하는 집단일 것이다. 이것이 진정 출연연 연구자이길 필자는 바란다. 2024년 청룡의 해가 우리나라 경제뿐만 아니라 기술창업 기업들에게도 푸른 기운이 감돌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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