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국제정치학 교수·전 국립외교원장)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촉발된 이-팔 전쟁이 중동은 물론이고 세계를 흔들고 있다. 러-우 전쟁은 2년을 향해 가고 있음에도 종전이 난망한 가운데 또 전쟁이 터졌다. 사실 이들 외에도 갈등과 분열이 실제 무력 충돌로 이어질 곳들이 적지 않다. 전쟁이 인류사의 반복되는 현상이기는 하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전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했던 아인슈타인의 통찰은 지난 5천 년 동안 92%가 전쟁이었고, 평화의 시기가 단 8%에 불과했다는 사실로 증명되고도 남는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 벌어지는 전쟁이 당연하거나 무시해도 된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반대로 현재의 전쟁들과 향후 터질 전쟁들은 인류가 역사상 가장 강력한 살상력을 가진 시점에서, 오히려 전쟁 방지를 위한 규범과 체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팍스 아메리카나든 글로벌거버넌스든 시스템과 질서는 물론이고, 문명 자체가 흔들린다는 공포감이 엄습한다.

가시지 않은 죽음의 공포 속에서 죽은 이들을 애도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있는 상황에서 원인과 책임, 전망을 분석한다는 것은 전문가여도 매우 불편하고 어려운 일이다. 서로 죽고 죽이는 살상의 현장은 상대의 잔혹함과 자신의 피해 참상을 최대치로 동원한 전쟁 프로파간다가 더해져 혼란을 가중한다. 그럼에도 정확한 분석은 향후 올바른 대책을 위해 외면할 수 없는 일이다. 사건 직전 및 직후의 시간에만 한정하면 하마스라는 팔레스타인의 무장 정파가 수천 발의 미사일과 지상 침투로 이스라엘을 기습공격해 살상하고 인질까지 잡은 참혹한 사건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과 지상전은 정당하고 필연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과 지지자들은 하마스의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이 사태의 모든 원인이라고 볼 것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수십 년에 이어진 이스라엘의 잔인한 점령과 팔레스타인 주민들에 대한 탄압에 책임을 돌릴 것이다.

한쪽을 전적으로 옳다고 보는 시각은 위험하다. 그중에서도 오랜 역사 및 지정학적 배경은 무시하고 현재 양상만 두고 아랍 원리주의의 테러로 결론 내리는 것은 성급하다. 그런 방법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고, 비극이 반복되며, 적대감은 더 커질 것이다. 이전에 러-우 전쟁의 위험성과 바이든 정부의 대외정책 패착을 냉철하게 지적했던 하버드 대학의 저명한 국제정치학자 스테판 월트(Stephen M. Walt)는 이-팔 전쟁에서도 미국의 대중동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이란을 배제하고, 적으로 만드는 중동의 평화구상은 애초부터 실패를 예약했었다고 지적한다. 이란의 배제는 하마스와의 관계 강화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번 하마스의 대공세는 자신들의 절박한 운명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이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평화협정을 강행하려 했기 때문에 벌어졌다.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은 아랍 세계가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약의 전제 조건으로 작동해왔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항상 ‘선 평화협약 후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주장했고, 이번에는 이스라엘의 뜻대로 흘러왔었다. 사우디는 이스라엘과의 화해 조건으로 미국으로부터 받을 것에만 몰두했다. 군사동맹 수준의 안보 약속과 첨단 핵기술 제공을 원했으며, 팔레스타인 문제는 사실상 무시했다. 하지만 사우디에 의미가 있는 것들은 팔레스타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들이었다. 결국 그들이 기댈 곳은 평화협정을 원하지 않는 이란뿐이라고 느꼈고, 자신과 이란이 반대하는 상황 전개를 중단시키기 위해 이번 사태를 일으켰다. 사우디도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 문제를 없는 것처럼 행동한 책임이 있다. 더욱이 이스라엘은 지난 수년 동안 ‘열린 감옥’ 가자지구를 ‘열린 지옥’으로 만들었다. 이스라엘 극우 정부가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폭력행위를 조종했고, 팔레스타인의 사망자와 난민이 급증했다.

그러나 진짜 책임은 미국에 있다. 미국의 대중동정책은 지난 수십 년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오바마 대통령 이후 지금까지 미국은 중동에서 빠져나오는 전략을 구사했다. 아프간과 이라크에서의 철수 약속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오바마는 셰일 가스 확보로 중동 의존도를 낮출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다만 여전히 위협적인 이란을 제어하기 위해 사우디와 이스라엘을 연결해 대치시키는 ‘역외 균형자(off-balancer)’가 되고자 했다. 비용 대비 효과 만점의 절묘한 전략을 완성할 수 있다는 자만에 빠져있었다. 이는 미국이 오바마 이후 세계 분쟁에서 지상군을 보내지 않는 비개입 노선과도 직접 닿아있다. 그 난리였던 IS에 대해서도 지상군은 끝내 보내지 않았고, 아프간에서도 20년 개입을 멈추고 야반도주하듯이 빠져나왔던 이유다.

그러나 결국 미국은 중동에서 빠져나오고 싶어도 빠져나올 수 없게 되었고, 오히려 수렁으로 빠져들게 되어버렸다. 가장 큰 이유는 복잡하게 얽혀있는 역내 지정학과 정서 등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관성과 희망 사고로만 일관해왔고, 전체 판도를 읽고, 입체적인 접근을 통해 문제해결을 도모하는 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스테판 월트는 "미국의 대외정책팀이 건축가가 아니라 기능공 수준으로 역할을 하는 동안 세계의 정치는 점점 제도와 구조적 문제로 굳어진다"라고 했다. 반창고를 붙이는 일로 근본적인 상처는 치료하지 못하는 법이다. 미국은 해결의 열쇠를 지닌 네타냐후와 그를 둘러싼 극우 시온주의자들을 제어할 능력은 물론이고, 의사조차 없었다. 바이든이 이-팔 문제의 해결책으로 내세운 ‘두 국가론’은 마치 북한에 대해서 언제든지 협상할 용의가 있다는 식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영혼 없는 위선의 평화 제스처일 뿐이다.

이번에도 확인된 것은 7백만 팔레스타인의 운명에 대한 진정한 고려 없이 중동에서는 어떤 평화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만들고, 유지해오던 질서를 불리해졌다고 어기는 것을 수용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미국 없이 또는 미국의 리더십에 기대하지 않는 국제질서의 다극화가 본격화되고 있다. 거기에는 중국만 있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든, 글로벌 사우스든, 유럽이든 동기는 달라도 결국 한 지점을 향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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