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진 ETRI 지능형실감콘텐츠연구실 선임연구원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했을까? 학업을 마친 후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기에 전, 필자는 왜 일을 해야하는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아무 목적 없이 일하는 것이 미래의 내 삶을 무미건조하게 만들 것 같았고 그때까지 경험했던 짧은 삶을 되돌아보았다. 머릿속에 남아 있던 좋은 기억들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준 순간들이었다. 앞으로의 삶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세상에 ‘소금’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산업, 사회 등 세상에 필요한 기술들을 연구개발하는 정부출연연구원의 일이 내의 목표와 잘 맞을 것 같았다.

이렇게 바라는 연구원의 삶이지만 연구가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세상이 너무나도 빨리 변하는 것 같다. 그 변화를 몸소 체험했던 순간은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이었다. 당연히 이세돌의 승을 점쳤던 나에게 알파고의 승은 신선한 충격이였다. 인공지능기술이 그토록 빠르게 진화한 것이다. 또한, 현재는 가상·증강현실기술이 우리 사회 곳곳에 적용되어 활용되고 있으며 과거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이렇게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정보는 넘쳐나고 배워야 할 지식의 양은 점점 늘어만 간다. 시간은 야속하게 점점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몰랐던 것들을 하나씩 알아가고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가는 연구의 즐거움이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가상직업훈련 콘텐츠 연구개발이었다. 가상현실 기반 훈련은 실물 훈련 대비 분명한 이점이 있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평소에 경험하기 어려운 것을 생성해 제공할 수 있고, 특정 절차를 반복제공하거나 실수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줄 수 있다. 하지만 실물교육에서 활용되는 교수법이 가상공간 내에서는 필요한 정보를 직관적으로 제공할 수 없어 효과적인 훈련을 제공하기 어렵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수교육에서 활용되는 중재 기법을 가상환경에 적용하였다. 훈련자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하고, 적절한 시기에 중재를 제공하여 효과적으로 가상훈련을 진행할 수 있게 하였다. 또 리빙랩을 운영하며 가상훈련의 효과를 검증했고, 다양한 현장 전문가와 사용자들의 피드백을 들으며 연구결과의 질을 높였다. 각각의 일들이 결코 쉽지 않았지만, 노력 끝에 만들어진 연구결과물이 활용되었을 때 더할 나위 없이 보람을 느꼈다. 특히나 사회 취약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발달장애인 대상으로 직업교육에 활용되고 훈련생들이 취업까지도 이어지는 결과를 보았을 때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현재는 직업훈련 콘텐츠 개발 경험을 토대로 가상·증강현실과 관련된 새로운 연구에 도전 중이다. 센서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용자가 더 자연스럽게 가상세계를 몰입할 수 있도록 이질감 없는 상호작용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앞으로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 예상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내가 만들어 가는 작은 변화가 다른 누군가에게 작게나마 도움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하나씩 연구하다 보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어쩌면 미래에는 내가 바라던 세상에 꼭 필요한 ‘소금’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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