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균 ETRI 기술창업실 책임연구원

최근 수재 소리를 듣는 똑똑한 학생들이 과학기술 분야가 아닌 의대를 목표로 ‘무한 재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SYK대 중도탈락자가 2018년 1339명에서 지난해 2131명으로 5년 연속 증가했고 대다수가 의대를 향하고 있다. 국가 미래를 위해서는 이들의 ‘의대 바라기’를 ‘과학기술 바라기’로 돌려야 하는데 오히려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미래인재의 진로방향이 전향적으로 바뀌길 기대해 본다.

요즘 정부출연연구원을 비롯한 과학기술계가 뒤숭숭하다. 슬픈 현실이지만, 연구자들 사이에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2024년 연구개발 분야 예산을 대폭 삭감하기로 했다. 내년 주요 국가 연구개발 예산이 8년 만에 감축되는 가운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사업 631개 중 삭감된 사업은 절반이 넘는 317개 사업(50.2%)이다. 예산규모는 올해 9조 8844억원 대비 2조 284억원(20.5%)삭감이고 그 중 절반 이상(60.8%)은 R&D 사업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정부출연연 R&D 뿐만 아니라 ‘국민공감?국민참여 R&SD 선도사업’이 96.4%, ICT중소기업?스타트업을 위한 ‘ICT R&D 혁신바우처 지원’, ‘민관협력기반 ICT스타트업 육성’ 사업이 90% 이상 삭감되는 등 중소기업 및 기술창업을 지원하는 사업까지도 대폭 삭감되어 관련 분야 연구자로서 아쉽다.

출연연이나 대학에서 추진하는 R&D는 국가 미래 발전의 씨앗일 뿐만 아니라 글로벌 기술패권 쟁취를 위한 가장 중요한 핵심무기다. 농부가 아무리 힘들고, 배가 고프다고 해서 춘궁기때 종자를 먹지는 않는다. 씨앗은 미래의 약속된 열매이기 때문이다. 또한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 R&D는 산업 생태계 유지를 위한 동맥과 같다. 피가 잘 돌아야 일자리도 창출되고, 세수도 증가시킬 수 있을 텐데, 내년에 동맥경화가 걱정되는 것이 나만의 생각일까?

국가 R&D를 둘러싼 환경이 좋아져도 시원치 않을 판에 출연연 R&D 예산마저 줄어든다면 과연 어느 누가 출연연에 문을 두드리고,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건전재정’ 기조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일방적 R&D 예산 축소가 아닌, 합리적 R&D 혁신방안에 대해 필자는 다음과 같이 제안해 본다.

첫째, 국가 R&D 예산은 최소한 현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 과학기술계 현장과 소통없이 예산 삭감은 득보다는 실이 크다. 예산 축소에 대한 명확한 논리와 근거 그리고 향후 방안에 대해 과기계와 토론이 필요하다고 본다.

둘째, 국가 R&D 성과창출을 위한 R&D 사업화 기능을 더욱 강화시켜야 한다. R&D 뿐만 아니라 R&D성과를 위한 사업화 역시 지속적인 투자와 기다림이 필요하다. 파괴적 혁신성과는 결국 인내심을 가진 자만이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스타트업(Start-Up) 확산을 위한 지원책을 오히려 강화시켜야 한다. 국가 차원에서 스타트업 육성은 버릴 수 없는 카드이기에 ‘나눠먹기식 지원’, ‘복지성 지원’이라는 생각은 지워야 한다. 오히려 지금이 공격적으로 육성할 시점이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국가 R&D 예산 감축→신규?계속사업 축소→기존 연구자 이탈?신규 연구자 감소→R&D성과 부실→산업계 파급효과 취약→국가 기술경쟁력 후퇴→글로벌 선도국가 위상 약화→중진국으로 후퇴 순으로 악순환이 반복될까 두렵다. 이처럼 만약 매년 R&D 예산이 20~30%씩 삭감된다면, 과연 어느 누가 과학자를 꿈꾸겠는가?

수많은 똑똑한 인재가 과학자가 되어야만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의 미래가 있지, 각자도생의 자세를 취한다면 국가의 미래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미래인재에 투자하여 이들이 미래 R&D에 주인공으로 발벗고 나설 때 우리 과학기술계의 미래 또한 밝을 것이라 생각한다.

국가 R&D도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겠다"는 선진국의 과학기술정책이 부러운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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