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옥 청주시 1인1책 펴내기 강사

팔월의 날씨가 괴이하다. 그냥 여름이라 더운 거라 치부하기엔 이상스러울 정도로 된더위가 치닫는다.

갑자기 들이붓는 소낙비를 피할새 없이 쫄딱 맞고 있던 늙수그레한 아저씨가 하늘을 쳐다보며 혼잣말로 볼멘소리를 한다.

"참, 날씨 한번 개떡 같구먼."

그 옆을 지나쳐오며 개떡 같다는 말의 의미를 찾으려 하늘을 보니 어디라도 한점 흠잡을 곳 없을 만큼 하늘이 청명하다. 저 파란 하늘에 소낙비라니 그 말이 나올만하다.

장마가 지루하게 내리는 여름날이면 어머니는 개떡을 만드셨다. 그 더운 오뉴월 폭양인데 뒷마당 화덕 위에 양은솥을 걸어놓고 고주배기 불을 지피는 어머니의 등허리는 땀인지 빗물인지 흠뻑 젖어 있었다.

시골의 여름날은 밤낮없이 풀벌레들의 울음소리와 매미 소리. 온갖 새들의 우짖음에 고요할 새가 없다. 툇마루에 배를 깔고 누워 채근하던 막내딸은 나른한 잠에 빠져들다 매미 소리가 귓전에서 울리고 양은솥 뚜껑에서 새어 나오는 김에서 구수함이 코끝을 자극할 때쯤이면 벌떡 일어나 눈을 비볐다.

삼베 보자기가 깔린 널따란 채반 위에 내 손바닥 크기로 네모반듯하게 썰어 펼쳐놓은 개떡을 보며 이게 무슨 떡이냐고 투정했다. 개떡이란 이름을 들으면서도 앞 글자 "개"는 생각지 않았고 "떡"에만 의미를 두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명색이 떡이라 하면 고소한 콩고물을 묻힌 인절미나 달짝지근한 팥소를 넣어 동글동글 만든 찹쌀떡을 생각했다. 막걸리를 넣어 푸짐하게 부풀린 빵도 아닌 개떡은 밀가루에 콩 범벅으로 아무렇게나 만들어 익힌 그야말로 개떡 같았다.

뜨거운 열기를 식히느라 채반 위의 개떡에다 연신 어머니는 부채질하시면서 차갑게 식고 나면 떡보다 더 맛있을 거라 했지만 우매한 어린 입맛은 그 말이 들어올 리 없었다. 식구들 모두는 너무도 맛있다 했지만 콩 냄새도, 밀가루 냄새도 싫다며 끝내 먹지 않았던 것 같다.

왜 세상의 모든 것 중 유독 안 좋은 의미를 부여할 때 개라는 글자를 붙였을까. 하물며 불교에서도 개(蓋)는 번뇌를 달리 이르는 말로써 그리 좋은 뜻으로 쓰이지 못한다고 한다. 의미가 어떠한들 오늘처럼 불볕더위에 지쳐 입맛조차 잃어가는 날에는 어머니의 개떡이 몹시 그립다. 밀가루를 물그름하게 반죽한 후 텃밭에서 후드득 따온 강낭콩 듬뿍 넣어 어머니만의 솜씨로 얄팍하게 쪄낸 쫀득한 개떡은 세상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최고의 먹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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