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연 천안희망초등학교 교장

초임 시절, 벌써 40여 년 전의 교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학생이 헌 신문지로 돌돌 말은 물건을 가지고 와 어찌할 바를 모르는 표정으로 책상 위에 내밀었다. 어제가 할아버지 제사였다며 부침개를 가져왔다. 고구마를 수확할 때쯤이면 고구마 두 개를 싸 들고 오는 학생, 껍데기가 반쯤 깨진 삶은 달걀을 가져오는 학생 등, 그저 정과 정이 오가는 사람 사는 모습의 교실 풍경이었다. 그러다 보니 웬만한 가정 사정을 모두 꽤 찰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어떤가? 아이들이 가정에서 누구랑 살고, 부모님은 무엇하는 분이시며, 어떤 가정환경에서 사는지조차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아이들이 선생님께 축하의 꽃송이 하나 드려도 범죄가 되는 그런 삭막한 시대이다. 물론 개인정보도 보호되고 불합리한 관행이 있다면 고쳐야 하겠지만, 교육이 법규에 너무 얽매여 교육 본연의 기능이 상실되고 있다. 무엇하나 하려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제한적이다.

지난주, 젊은 선생님의 안타까운 죽음을 보며 그 충격이 지금도 가시지 않는다. 어떻게 이 지경까지 교육이 내몰리게 되었는지 속상하기만 하다.

그동안 학교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웃음이 피어났었고 사랑이 넘쳐났었다. 그러나 학교 교육과 관련된 수많은 법규가 제정되면서 교육 현장은 더 어려움을 갖게 된 점도 사실이다. 법규가 최소한의 권리를 지켜 주면서 교육적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학교 구성원이 서로 감시하고 고발하는 분쟁과 소송의 장으로 내몰리게 된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력이 세계 6위로 나타나는데 아마도 건국 이래 최초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상대적 위치를 비교 분석한 결과도 군사력은 세계 6위, 수출 시장 점유율이 세계 6위, 반도체 점유율은 세계 2위, 글로벌 국력 순위는 6위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력이 이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 바로 교육의 힘이라는 것을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교육은 이처럼 나라 발전의 원동력이고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렇게 중요한 교육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구성원 간의 갈등을 양산하고 서로 감시하는 모습은 참으로 걱정스럽다. 교사와 학생, 교사와 학부모 간의 갈등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법규적 대응만이 최선일까? 법규적 대응이나 논의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법만으로 갈등을 해소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교육의 위기를 이겨내는 것은 법규를 넘어서서 사랑으로 감동을 주는 교육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학교가 사랑의 교육으로 서로 신뢰하고 하나가 되는 모습으로 다시 세워져야 한다. 이렇게 될 때 선생님의 권위가 바로 서는 교단으로 돌아올 것이다.

학교는 구성원 간의 갈등이 민원으로 얽혀지는 곳이 아니라, 아이들의 미래의 꿈을 이야기하는 곳이 돼야 한다. 이제 선생님이 아이들을 위한 수업과 생활교육, 진로 설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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