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석 대전을지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

"그 자리에 가더니 완전히 딴사람이야." 지위나 인기를 갑자기 얻은 사람이 흔히 듣는 말이다. 흥미로운 건 이 말이 ‘과학적으로’ 사실이라는 점이다. 승리의 경험은 테스토스테론을 분출하고 도파민을 증가시키면서 생각과 행동을 바꾸고 진취적인 사람, 인기 있는 사람으로 만든다. 문제는 권력에 취하게 되면서 테스토스테론의 늪에 빠지는 경우다. 그야말로 안하무인, 호르몬이 인격까지 바꾼 것이다.

"오빠 변했어."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은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에 빠지면 뇌에 페닐에틸아민이 방출되면서 손끝만 닿아도 가슴이 콩닥거리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우리의 신체는 이런 강렬한 느낌을 지속적으로 견뎌 낼 수 없다. 불타는 사랑 대신 공감의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분비된다. 찌릿한 설렘만을 꿈꾼다면 그들의 사랑은 거기까지가 될 것이다. 호르몬이 변하면 사랑 또한 변하기 때문이다.

호르몬은 ‘불러 깨우다, 자극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그리스어 ‘Hormao’에서 유래된 말로, 외부 환경의 변화에 체온, 혈당을 유지하고 감정과 욕망, 스트레스까지 관장하는 마술사다. 우리는 호르몬 덕분에 외부 환경의 변화에도 나의 생각과 행동, 사랑까지 지킬 수 있다.

여성은 2개의 호르몬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하나는 여성을 여성답게 만드는 에스트로겐으로 난소의 난포에서 생산되고, 또 하나는 임신 유지를 위해 태반과 난소의 황체에서 만드는 프로게스테론으로 심신을 안정시킨다. 할머니 세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18세 경 초경을 하고 결혼과 동시에 5~6명의 자녀를 낳느라 월경 횟수는 평생 50번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는 어떤가? 12세 정도에 초경을 하고 자녀 1명을 출산하면서 평생 500번의 월경을 한다. 즉 500번의 월경을 하는 동안 난소에서 엄청난 양의 에스토로겐이 만들어지지만, 프로게스테론은 절대 부족하다. 현대 여성은 이런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의 불균형 속에 살면서 할머니 세대와 다른 이유로 병원을 찾게 된다. 자궁근종, 선근증, 자궁내막증, 생리불순, 생리통, 불면증과 갱년기 등의 증상으로 말이다.

기성세대들이 모이면 입을 모아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시대가 바뀌었고 그에 따라 삶의 환경이 달라졌다. 호르몬은 환경에 따라 변하는 것, 결국 현대인의 호르몬체계가 변하면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 나아가 인생관, 그리고 질병까지도 변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주의를 살펴보자. 모두가 멋있고 진취적이면서 당당한 모습이 아름다울 정도다. 하지만 계속되는 승리, 더 멋진 사랑을 위해 "우리는 할 수 있어"를 외치며 자신을 소진하는 경우가 생긴다. 결국은 호르몬의 소진이며 ‘번아웃’이다. 여기에 더해 호르몬 의존성 질병까지 얻을 수도 있다.

내 몸이, 내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면 자신의 호르몬도 살펴봐야 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물론 운동과 스트레스를 줄이는 노력은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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