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배 ETRI 지식재산관리실 책임기술원 책임

신전이 있다. 우마차가 묶여 있다. 매듭은 어지러이 얽혀 있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감도 잡기 어렵다. 전해지는 말로는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의 정복자가 된다고 한다. 한 사내가 온다. 매듭을 살펴본다. 칼을 뽑더니 매듭을 잘라 버린다. 쾌도난마! 사내는 후에 아시아를 정복하고 대제국을 건설했다. 눈치챘겠지만 사내는 알렉산드로스 3세, 일명 알렉산더 대왕이고 이야기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라고 불리는 일화이다. 놀라운 발상을 통해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어려운 문제를 단번에 해결한다는 이야기로 많이들 인용된다. 하지만 여기서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현실 세계에서는 매듭을 칼로 잘라 버리는 것과 같은 기발하고 놀라운 해결책은 많지 않다. 뉴턴이 구축했던 고전역학의 세계, 절대적 시공간의 개념을 단번에 깨뜨린 상대성이론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어려운 문제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부작용도 있다. 알렉산더 대왕이 매듭을 멋지게 잘라버림으로써 그 매듭을 자르지 않고 정공법으로 푸는 방법은 아무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 매듭을 풀기 위한 많은 시도와 시행착오들 속에서 알 수 있었을 많은 매듭 관련 기술들이 사라졌다. 왜 그 매듭이 풀기 어려웠는지 원인을 분석해서 더 풀기 어려운 매듭을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마치 금을 만들어내려고 연금술을 연구하다가 근대화학이 발전한 것처럼. 하지만 알렉산드로스 3세가 그 매듭을 잘라버리는 순간 이러한 기회들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는 이미 왕이었다. 매듭을 칼로 자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왕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일반인이 그와 같이 매듭을 잘라버렸다면 신을 모독한 죄로 극형에 처해졌을 수 있다. 알렉산더 대왕 이전에도 매듭을 잘라버리는 것을 이미 생각해낸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왕이 아니었고 실행하지 못했다.

당신이 왕이 아니라면 매듭을 자르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 왜 남들처럼 매듭을 풀어보려 하지 않고 자르려고 하는지, 매듭을 자르는 데는 어떤 도구가 가장 적절한지, 매듭을 자르는 데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은 어느 정도인지, 잘린 매듭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매듭을 잘라버린 것에 대한 신전 사람들의 불만을 어떻게 잠재울 것인지 등 수많은 사항들을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필자의 업무 분야인 특허 쪽에도 ‘고르디우스의 매듭’ 같은 오래되고 어려운 문제들이 있다. 비단 특허뿐만 아니라 사회,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 공동체가 안고 있는 문제들도 비슷할 것이다. 현실 세계의 문제들은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으며 실질적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이 사교육 문제이든, 저출생 문제이든, 국가 R&D 예산에 관한 문제이든. 성급한 해결책은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를 더 악화시키기도 한다. 알렉산더 대왕의 대제국은 그가 죽은 뒤 여러 국가로 분열됐다.

폼 나게 매듭을 잘라버리는 것보다 정교하게 매듭을 풀어내기 위하여 오늘도 디테일에 숨어 있는 악마와 싸운다. 특허 품질을 어떻게 높여야 할까? 특허 활용률을 어떻게 높일까? 특허를 어떻게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을까? 꼬여있는 매듭을 풀기 위해 오늘도 주 52시간 한도에서 열심히 노력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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