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지난 보름간 가장 많은 뉴스를 생산해낸 사건은 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과 관련된 논란이었다. 앞으로 두고두고 뉴스거리가 될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출을 둘러싼 논란을 제외하고 말한다면 말이다. 두 사건 모두 대한민국이 ‘둘로 쪼개진 나라’임을 입증해준 불행한 사건이지만, 양평 사건의 경우엔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한가지 의문이 있어 그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 "도대체 특별감찰관은 어디로 갔는가?"라는 의문이다. 양평 사건은 그 진실이 무엇이건 특별감찰관만 있었어도 미연에 예방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특별감찰관은 문재인 정권 시절 대통령 문재인이 내내 비판을 받았던 문제다. 대통령 측근과 청와대 참모들의 비위 의혹이 잇따라 터져나왔음에도, 문재인은 집권 기간 내내 청와대 특별감찰관을 공석으로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나중엔 갈등을 빚어 초대 특별감찰관 이석수를 사실상 내쫓았을망정 박근혜 정권도 두었던 특별감찰관을 왜 문 정권은 그리도 한사코 거부했던 것인지 도무지 그 이유를 알기 어려웠다.

박 정권 때에 있었던 제도는 무조건 폐기하는 게 적폐청산이라는 건가? 하지만 박 정권을 압박해 특별감찰관법안을 발의하고 성사시킨 주체는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이 아니었던가. 이 법안의 최초 발의자는 친문 핵심 의원 박범계·전해철 등이었으며, 나중에 "감찰 대상의 범위 확대가 필요하다"며 특별감찰관법을 강화하는 개정안을 냈을 때의 당 대표는 문재인이 아니었던가.

2021년 2월 중순에 터진 청와대 민정수석 신현수의 ‘사표 사건’ 시에도 특별감찰관 문제가 등장했다. 신현수가 문재인에게 "특별감찰관을 빨리 지명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 참 희한한 일이었다. 다른 건 제쳐 놓더라도 대통령의 자녀들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진 게 그간 몇 번이었던가. 모든 논란을 야당과 보수언론의 정치공세로 일축할 수도 있겠지만, 특별감찰관이 있었다면 그런 논란의 상당 부분도 방지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피곤하거니와 지겹지도 않았나.

그런데 그때 못지 않게 피곤하고 지겨운 일이 윤석열 정권에서 똑같이 벌어지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문 정권의 그런 내로남불을 "조폭 수준의 저급한 행위"라고 비난했던 국민의힘이 대통령 윤석열과 더불어 똑같은 수준의 내로남불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된 과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2022년 3월 9일 대선에서 승리한 대통령 당선인 윤석열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특별감찰관제 재가동을 지시했다. 잘한 일이었다. 그런데 5월 10일 대통령 취임 후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윤석열이 특별감찰관을 임명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그러자 "윤 대통령은 어불성설이라는 반응을 보였다"는 반박이 측근을 통해 나왔다. 이게 5월 말에 벌어진 일인데, 이후 분위기가 영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 갔다.

7월 7일 거침 없는 직설을 잘하는 동아일보 대기자 김순덕은 "위기의식 없는 대통령의 ‘건희사랑’ 문제"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대통령 부인 김건희의 팬클럽 ‘건희사랑’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윤 대통령은 대선 전 약속한 대로 특별감찰관을 속히 임명해야 할 것이다"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다음날 한겨레 논설위원 강희철은 "김건희, 윤 대통령 오랜 친구들의 암묵적 금기어"라는 제목을 칼럼을 통해 윤석열이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고 보면서 윤석열을 초임 검사 때부터 잘 안다는 법조계 인사의 말을 소개했다. "특별감찰관의 위험성을, 특수통 출신인 윤 대통령이 모르겠어요? 최순실 게이트 때도 당시 이석수 특감의 내사가 기폭제가 됐잖아요. 그래서 일부러 임명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쭉 비워 둘 거라고 봅니다."

그로부터 약 한달 후 ‘건진법사’로 불리는 무속인이 대통령 부부와의 친분을 사칭해 세무조사나 인사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처럼 행세하며 이권에 개입한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대통령 부부가 살게 될 서울 한남동 관저 공사에 김건희와 관련 있는 업체가 참여했는데, 친분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여야를 막론하고 특별감찰관부터 서둘러 임명할 필요가 있다는 요구가 빗발쳤지만, 윤석열은 아무 말이 없었다.

8월 23일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우상호가 ‘명언’을 남겼다. 그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주호영이 특별감찰관과 북한인권재단 이사를 동시 임명하자고 제안한 것과 관련해 "저희 입장에서는 특별감찰관 없이 김건희 여사가 계속 사고 치는 게 더 재미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에 국민의힘 원내대변인 박형수는 "민주당은 대통령 부인에 대한 공격과 조롱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우상호는 ‘재미’를 ‘이익’이란 뜻으로 쓴 것 같다. 예의 바른 표현은 아닐망정, 많은 사람들이 그 발언의 취지에 공감했을 것이다. 사실 민주당은 "김건희가 없었더라면 큰 일날 뻔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간 김건희에 집착해 왔으며, 그래서 민주당은 펄쩍 뛸망정 "김건희 스토킹 정당"이라는 별명까지 얻지 않았던가. 그러니 겉으론 뭐라고 할 망정 내심 특별감찰관제를 원치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9월 25일 김순덕이 칼럼을 통해 다시 나섰다. 그는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부인과 연결된 측근들로 인해 한결같이 불행한 결말을 맞았다"며 "정말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지만, 윤 대통령도 불행한 결말을 맞지 않으려면 특별감찰관이든 뭐든 임명해 ‘김건희 리스크’를 끊어내기 바란다"고 했다. 백번 천번 옳은 말이건만, 윤석열은 여전히 입을 꾹 다문 채 특별감찰관을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 결과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바와 같다. ‘김건희 리스크’는 윤석열의 지지율을 낮추는 데에 큰 기여를 해왔다. 막연한 짐작일 뿐이지만, 10% 정도는 잡아먹지 않았나 싶다. ‘김건희 리스크’는 사실상 ‘윤석열 리스크’다. 윤석열은 자신 때문에 아내와 처가가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애처가다. 그래서 김건희와 처가에 대한 감시와 통제는 패륜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사람이 왜 무서운 공적 엄중함을 요구하는 대통령을 해보겠다고 나섰는지 모르겠다. 그는 손 흔드는 의전에만 만족할 뿐 대통령을 잘해볼 뜻은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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