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훈 ETRI 지능정보표준연구실 선임연구원

‘초일류’, ‘세계최초’, ‘시장선도’, ICT분야에 종사한다면 필자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소속이 어디든 관계없이 익숙한 용어들이다. 이런 용어들은 ICT 관련 광고나 기사를 통해 자주 노출되어 일반인들에게도 ICT하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단어이다.

그래서일까? ICT분야 연구를 시작하게 된 대학원생 시절부터 주변 지인들로부터 필자는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인지 의아해했던 기억이 있다.

특히, 대학원생 시절에는 그 의문이 더 크게 다가왔다. 왜냐하면, 필자는 당시 대학생 시절보다 조금 더 많은 영어문서를 읽고 발표했다. 조금 더 어려운 수학을 이해하고 조금 더 어려운 코드를 구현할 일이 잦아졌을 뿐이었다. 대학생 시절과 큰 틀에서 달라진 것이 없어 좀 더 오래 공부하는 학생, 그 이상의 느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필자는 대단한 일은 고사하고 ICT분야 연구자로서 최소한의 기여를 하고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 대기업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연구원으로서 일해오면서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의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세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기업 연구원으로 재직했을 때, 머신러닝 기법을 활용하여 사용자의 성향을 고려한 자동 네트워크 전환 솔루션 개발에 주요 기여자로서 참여했던 경험이 있다. 그 당시 출근해서 했던 업무는 솔루션을 고안하고 검증하며 개선하는 것으로 사실 학위과정 동안 수행했던 업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필자가 개발한 해당 솔루션이 상용화되면서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감흥을 느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사용자들로부터 해당 솔루션에 대한 불만 사항을 비롯해 만족감을 나타내는 긍정적인 평가까지 여러 다양한 종류의 피드백을 받게 되었다. 이를 통해 필자가 던진 작은 돌멩이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현재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연구원으로서 5G 및 6G 이동통신 분야 표준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이전 상용화 경험을 통해 느꼈던 비슷한 감흥을 종종 느끼곤 한다. 먼저 해당 표준기술의 국제표준화를 담당하는 3GPP(3rd Generation Partnership Project)라는 표준화 단체의 회의에 참석해보면 놀라웠다.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국내·외 대기업, 대학, 연구원 등 내노라하는 기관에서 많게는 400여 명이나 되는 전문가들이 회의에 참석한다.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은 물론, 여러 참여기관들이 이렇게 많은 전문가를 투입하는 것 자체로 해당 국제표준기술의 영향력을 가늠해볼 수 있다. 또한, 이동통신 분야는 이미 대중들뿐만 아니라 ICT업계 전반에도 영향을 미치는 기술 분야이다. 필자가 제안한 이동통신 표준기술이 최종 규격에 반영되면 추후에는 전 세계 이동통신 장비에 해당 기술이 널리 적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를 고려하면, 필자가 던진 작은 돌멩이가 세상에 미칠 영향력은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필자는 작은 돌멩이가 큰 물결이 되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앞으로도 즐겁게 연구에 매진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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