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란 수필가

어린 왕자가 떨어진 곳은 아무도 만날 수가 없는 외로운 사막이었다.

"어느 날에는 해 지는 모습을 마흔 네 번이나 보았어요." 잠시 후 그는 말을 이었다. "아저씨도 알 거예요. 누구나 몹시 슬픈 날에는 해 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는 걸요."

"마흔 네 번이나 볼 만큼 슬펐었니?" 어린 왕자,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장면을 읽으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하염없이 일몰을 바라보는 어린 왕자의 마음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어린왕자의 고독하고 외로운 모습이 투영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가끔 외로움이 불쑥 나를 엄습한다. 마음에서 오는 내면의 신호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인간의 욕망 때문에 인간은 더욱 외로운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숨이 막히게 팍팍한 삶을 산다. 우리는 타인에게 시선을 돌리려고 하지 않으면서 늘 외롭다고 말한다. 어쩌면 타인과 교류하는 것을 잊어버려 외로워졌고, 그래서 외로움을 잊으려 자발적 바쁨을 선택하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늘 외로움을 탄다. 휴대전화 속에는 나와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어느 때는 누구에게도 전화를 걸고 싶지 않다. 계속 울리는 전화를 외면하고 그냥 우두커니 혼자 있고 싶은 날도 있다. 어느 시인은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라"라 했다. 외로움은 누가 만들어 준 것이 아니다. 스스로 만든 고독이 외로움을 더하게 한다.

정호승 시인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외로운 사람들을 위로한다. 외로움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의 특권이다. 외로운 날이면 마음을 누르려고 애쓰기보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져 보는 것도 좋다. 어린왕자가 해 질 무렵의 풍경을 바라보려고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렸듯이 말이다.

외로움은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다. 친밀한 관계의 회복으로 해소된다. 우리는 수많은 관계를 맺으면서 딱히 터놓을 사람이 없어 외롭다. 실망을 주는 일이더라도, 약하게 보일지 모른다는 걱정이 앞서더라도 내 마음을 가족과 친구, 동료들에게 터놓고 소통하면 그 이상의 애정과 사랑이 되돌아와 외로움은 어느새 옅어진다.

외롭고 공허한 마음이 들 때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슬픈 풍경 위로 쓰러진 어린왕자와 관계 맺기를 맺는다. 내 존재가 궁금해질 때, 누군가를 사랑할 때, 저기 먼 별에서 온 금빛 머리카락을 가진 작은 소년 어린왕자가 들려주는 너무나 아름다운 메시지의 울림이 우리의 마음을 두드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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