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강본 한국교통대 스포츠산업학전공 교수

홈런을 치고 방망이를 화려하게 던지는 경우, 상대방 선수에 대한 위협구, 많은 점수 차로 이기고 있는데도 도루를 하는 경우, 상대방을 위협하는 슬라이딩 등 야구에서는 다양한 이유로‘벤치클리어링’이 발생한다. ‘벤치클리어링’은 벤치를 비운다는 의미이지만 의역하자면 집단 몸싸움이다. 프로야구에서 우리가 기억하는 장면도 많이 있다. 이승엽, 박찬호, 김병헌 등 국민 영웅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벤치클리어링은 대부분 불문율 때문에 발생한다. 규칙이나 규정으로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암묵적 규율을 지키지 않았을 경우 특히 확대된다. 이치에 어긋난 행동을 하거나 상대방의 감정을 자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간혹 우발적이거나 계획적으로도 발생한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에게 손해이다. 해당 선수는 신체적, 금전적으로 손해이면서 경기 출전도 제한되기 때문이다.

불문율을 어겼다는 것은 스포츠맨십의 핵심 내용인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문제로 귀결된다. 수단과 방법의 정당성도, 승리에 대한 기쁨도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라는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스포츠가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가치 역시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또한 불문율은 역사적 산물이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각각의 종목이 유지해온 압축적 정신을 담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전이되어 의미를 확산하고 있는 스포츠맨십, 페어플레이 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또 따른 측면에서 벤치클리어링은 상대와의 싸움만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다. 동료의 보호와 팀의 단합이라는 의미가 크다. 화풀이의 대상으로 상대를 인식하는 것은 프로의 세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고, 아주 위험한 생각이다. 그렇다고 해서 벤치클리어링을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다. 아무리 자기의 팀을 보호하고, 상대 팀과의 기싸움에 밀리지 않기 위해서 행동한다고 하지만 지켜보고 있는 팬들의 심정도 당연히 고려해야 한다. 동물의 생존 싸움이나, 뒷골목 싸움패의 행동이면 팬들은 경기장에서 발길을 돌릴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바라는 공정한 경기의 모습도 아니다.

성문화된 법은 아니지만 압축된 불문율은 우리 사회에도 존재한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사회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비난받게 된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은 비단 경기장 내의 문제만은 분명 아닐 것이다. 불평등과 차별이 정당화되는 세상에서 ‘사회적 벤치클리어링’은 최소한의 도덕과 사회적 균형을 유지하려는 몸부림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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