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영 한서대학교 항공융합학부 교수

일반적으로 비상구는 급박한 사고발생 시 신속하게 탈출하거나 대피할 수 있도록 준비된 출입구로 관련 법규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건물에는 출입구와는 별도로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되어 있다. 항공기에도 규정에 따라 다수의 비상구가 설치되어 있고 비상구에 있는 좌석은 넓은 여유 공간이 있어 여행객들이 선호하는 좌석이다. 이 좌석은 비상시 승객에 대한 대피 안내와 지원 등 특별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에 항공사에서 미리 확인해 배정한다.

지난달 제주에서 학회를 마치고 귀가하기 위해 제주공항에 대기하는데 아시아나항공 소속 항공기가 대구공항으로 운항 중 비상구가 개방되어 항공기 운항이 지연된다는 소식을 들었고 인명사고 여부와 운항 중에 비상구가 개방되었다는 생소한 사고가 어떻게 발생하였는지 확인해 보고자하였지만 조사 중이어서 더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항공기에 탑승했는데 오래 전에 있었던 가족사가 떠올랐고 무사히 귀가하였다.

필자는 항공기 사고와 관련한 특별한 사연이 있다. 1971년 초등학교 시절 속초에서 김포공항으로 향하던 국내선 항공기에 어머니가 탑승하였고 강제 납북사건이 발생하였다. 순항 중인 항공기 내에 범인의 사제 폭탄이 폭발하여 기체에 구멍이 뚫렸고 폭발로 부상자가 생겼고 어머니는 고막이 파열되었다. 더욱이 군인 가족인 어머니는 신분을 감추기 위해 주민등록증을 씹어 삼키셨단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승무원이 범인을 제압하고 항공기는 동해안 해변가에 불시착하였다. 항공기 내에서 장시간 생명에 위협을 느끼며 불안해 했을 어머니와 탑승객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모골이 송연하다. 다행히 어머니는 현재까지 별다른 후유증 없이 건강하게 잘 지내시고 필자는 이런 이유로 항공기 사고가 발생하면 이 사건이 머릿속에 떠오르곤 한다.

이번 비상구 개방사건을 접하면서 현재 관련 기관에서 사고원인을 조사하고 대책도 세우겠지만 당시 급박한 상황에서 탑승객들이 침착하게 좌석에 앉아 질서를 유지하여 2차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점이 다행이었고 우리 사회의 성숙한 질서의식을 엿볼 수 있었다.

안전과 질서는 동전의 앞뒷면처럼 불가분의 관계로 질서는 안전을 보장하지만 무질서는 혼란과 사고를 야기하기에 반드시 관리가 필요하다. 요리에 사용하는 식도는 편리한 도구이지만 용도를 벗어나면 흉기가 될 수 있어 안전을 구성하는 요소가 기능과 역할에 맞게 동작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항공사고에 대한 여러 연구결과를 보면 다양한 사고원인이 있지만 주된 원인은 인적요인이고 빈번한 교통사고의 경우도 인적오류가 크다. 항공사고와 관련해 마의 11분(Critical 11 Minutes)이란 표현이 있다. 이는 미국의 TWA항공사에서 과거 수년간의 항공사고를 분석한 결과 이륙 후 3분, 착륙 전 8분 사이에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므로 이 순간을 주의해야 한다는 조종사 안전 캠페인의 문구에서 나온 말이다.

인간의 오판과 실수에 의해 사고가 나는가하면 인간에 의해 사고를 예방할 수 있고 사고를 통해 더 안전해 지는 아이러니 속에 살고 있음에 씁슬함을 느낀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있지만 안전에 있어서는 더는 아프지 않고 안전해 졌으면 한다. 이제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고 엔데믹에 따른 여행수요가 회복되고 있다. 우리의 성숙한 질서의식과 철저한 대비를 통해 더 안전한 항공여행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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