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용일(1964~2015)

계곡으로 물고기 잡으러 따라 나섰다가
깨진 얼음장 속에 꽁꽁 얼어 있는 물고기를 보았다
물이 서서히 얼어오자 막다른 길목에서
물고기는 제 피와 살을 버리고
투명한 얼음 속에 화석처럼 박혔다
귀 기울여도 심장 뛰는 기척이 없다
조식을 하는지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사랑하면 사랑에 목숨을 묻기도 하듯이
물속에 살기 위해선
얼음이 되는 것을 두려워 말아야 한다
이글루 짓고 들어앉은 에스키모처럼
은빛 지느러미 접고 아가미 닫고
사방 얼음벽 둘러친 無門의 집에서
물고기는 다시 올 봄을 아예 잊었다
얼음장이 그대로 고요한 대적광전이 되었다

주용일의 시는 대개 현실을 넘어선 곳에서 출발한다. 위 시처럼 그의 시선은 얼음에 박힌 물고기에 가 닿는다. 그리고 그것을 불교적 상상력으로 형상화하는 것이다. 그의 시는 사물 그 자체보다 정신을 지향한다. 그러나 그의 의식세계는 그곳에 갇히지 않고 그것을 넘어 새롭게 열린다. 그의 시를 쓰는 행위는 완성된 언어의 건축을 지향하지 않고, 그것을 넘어 진정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그가 ‘문자들의 다비식’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이를 증명한다. 그에게는 정신도 문자에 갇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벗어나 대상에 온전히 스미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시는 불교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가 보여준 느긋한 시적 행보 속에서도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창작의 고통을 감당해 왔는지 알 수 있다. 위 시에서도 그는 무엇보다 올곧고 견고한 시정신을 보여준다. 그의 시는 깊은 사유와 절제된 언어로 표현되었다. 그는 세상의 허접한 생각들을 용납하지 않았다. 깊은 고심 속에 길어 올린 그의 시는 우리 삶의 중심을 꿰뚫어 본질에 이르게 한다. 그의 시는 오랜 성찰 속에 압축되고 정제되어 표출되었다. 그가 시 한편 한편에 들인 공력은 시적 긴장을 유지하며 우리 가슴으로 깊게 파고든다. 이로써 우리에게 삶의 허상과 욕심을 버릴 것을 일깨워 준 것이다.

김완하(시인·한남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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