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란 수필가

유토피아!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 현실 세계가 아닌 이상향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상향에 대한 꿈은 비단 서양뿐 아니라 동양에서도 오래전부터 있었다. 도연명이 말하는 무릉도원이 그렇고 청산별곡의 청산도도 나름 이상향의 공간이다.

최인훈의 ‘광장’을 읽는다. 소설 속 주인공이 바라는 진정한 이상향은 무엇이었을까. 주인공 이명준은 남북의 이데올로기 갈등 속에서 진정한 삶의 터전을 찾아 헤맨다. 소설 ‘광장’에서 북한은 이데올로기의 허상이요. ‘밀실’은 남한의 방종과 타락이 난무하는 이기주의의 공간이다. 하지만 그가 바라는 것은 ‘광장’과 ‘밀실’이 조화를 이루는 이상사회이다.

이명준이 그토록 원하는 ‘광장’은 남과 북 어디에도 없었다. 개인적인 삶에 한정된 행복일 뿐 진정한 의미의 광장은 없다. 결국 전쟁 포로가 된 그는 또 다른 광장 중립국을 향해 배에 오른다. 하지만 주인공은 두 마리의 갈매기를 보며 죽은 은혜와 자신 딸의 모습을 떠올리며 바다에 뛰어든다.

그가 갈구하던 광장은 현실의 도피처요, 존재 의미를 망각 시키는 수단이다. 우리도 삶의 행간에서 이상적인 삶의 공간 유토피아를 찾아 헤매는지 모른다. 사람은 주어진 현실에 만족함이 없다. 그래서 자신의 욕망이 아닌 타인의 욕망을 추구하며 사느라 내 안의 나를 잊고 산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소설 속의 또 다른 이명준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늘 무엇인가 꿈꾸고 바란다. 현실이 고달프고 각박할수록 이상향에 대한 갈망은 더해간다. 유토피아는 행복을 만드는 목표가 되는 동시에 수단도 된다. 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아를 찾아 나서는 것은 인간이기에 가능한 신의 선물이다. 공상의 세계로 남게 할 것인가, 현실에 존재하는 공간에 존재할 것인가는 우리 마음에 달려있다.

유토피아!

현실과 이상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곳이 진정한 유토피아이다. 완벽한 세상을 찾느라 이상만 추구했던 주인공이다. 작가가 독자에게 들려주는 주는 교훈은 ‘현실을 직시한 이상의 추구’이다. 완벽한 세상, 완벽한 사람이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유토피아라고 믿으면 그것이 바로 행복한 삶의 공간이요 나만의 광장이다.

나만의 유토피아!

그곳에서 남편의 아내이며, 내 아이들의 엄마이고, 사회의 구성원이며, 내 이웃의 이웃으로 살며 나의 존재 이유를 찾아보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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