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균 ETRI 기술창업실 책임연구원

작년 초 KBS 1 ‘TV쇼 진품명품’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역대 도자기 최고 감정가격인 15억원으로 책정된 명품 도자기가 나와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영롱한 비색을 자랑하는‘청자 포도동자문 매병’은 12세기 중기에서 13세기 제작된 고려청자의 일종이다. 우리나라의 영롱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도자기는 고려청자에서 분청사기, 조선백자로 이어진다. 조선백자는 순수하고 소박한 느낌을 주는 도자기로 청화백자를 최고로 인정하고 있다.

도자기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세 가지 핵심요소가 있다. 바로 흙, 불, 유약이다. 도자기의 흙은 종류와 성질에 따라 도자기의 외관, 성질, 내구성이 달라진다. 즉 좋은 흙(태토)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도자기의 가치는 완전히 달라진다. 도자기의 불은 온도(소성 온도)에 따라 도기, 청자, 백자로 달라지게 되는데, 도기의 경우 1200도 이하로 해야 하고, 청자의 경우 1200도~1300도, 백자의 경우 1300도 이상에서 구워야만 완성도 높은 도자기가 탄생하게 된다. 도자기 유약의 경우 자연적 또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원료 혼합물을 말하는데 도자기의 시각적 아름다움을 제공해 준다. 이처럼 명품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흙과 적절한 불, 시각적 아름다움을 제공해 주는 유약 등 세 박자가 잘 맞아야 진정한 명품 도자기가 탄생하게 된다.

그런데 도자기와 기술벤처가 무슨 상관이 있지? 라는 의문점이 들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명품 도자기와 명품 기술벤처는 만드는 과정과 탄생이 유사하다고 본다. 명품을 만들기 위한 세 가지 요소와 인고의 시간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명품 기술벤처를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도자기의 흙에 해당하는 것이 기술 또는 아이템일 것이다. 어떤 종류의, 어느 지역의 흙을 활용하느냐에 따라 도자기가 달라지듯, 비록 수면 밑에 있지만 원석과 같은 정부출연연구원 기술 및 아이템 중 어떤 것을 발굴하고 이를 어떻게 창업으로 연결시킬 것인가에 따라 명품 기술벤처 조건이 달라질 것이다. 출연연은 보물창고이다. 아마도 진흙 속의 투박한 원석과 같은 기술과 아이템을 보석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선구안(選球眼)이 명품 기술벤처 탄생의 첫걸음일 것이다.

둘째, 도자기의 불에 해당하는 것이 정부나 출연연의 역할이라고 본다. 불의 온도 조절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도자기나 나오듯이 혁신기술, 혁신기업에 대해 정부 및 출연연이 어떤 식으로 정책적 지원을 하느냐에 따라 명품 기술벤처의 시장 안착이 달라질 것이다. 특히 출연연의 수많은 내부 자원(기술, 인력, 제도, 시스템 등)을 어떻게 활용하고 강력하게 지원하느냐에 따라 명품 기술벤처의 성패는 크게 좌우될 것이다.

셋째 도자기 유약에 해당하는 것이 기술벤처의 제품과 서비스일 것이다. 유약은 도자기의 시각적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요소이다. 기술벤처는 유약처럼 고객들에게 최고의 제품 및 서비스를 보여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경쟁기업이 쉽게 넘볼 수 없는 자사만의 핵심 무기를 갖출 수 있도록 혁신기술 뿐만 아니라 혁신경영에도 힘을 써야 할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인고의 시간을 갖고, 얼과 혼을 다해 명품 도자기를 만들었듯이 현재의 우리 역시 명품 기술벤처 탄생을 위해 인고의 시간과 더불어 흙, 불, 유약과 같은 핵심요소를 집중 투자해야 할 시기이다.

고려청자 이후 분청사기가 출현한 것은 녹록지 못한 시대적 상황과 더불어 비록 저품질의 흙과 유약으로 부실한 가마 속에서 구웠지만, 창의적인 그림과 무늬를 표현함으로써 새로운 명품 도자기를 탄생시켰다. 이처럼 새로운 기법을 통해 새로운 명품 도자기가 나왔듯이,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현시대에 과거와는 다른 시각과 끊김 없이 차별화된 지원이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명품 기술벤처 탄생이 되지 않을까 싶다. 도자기를 굽는 장인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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