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옥 청주시 1인1책 펴내기 강사

오월의 사방은 어디를 둘러봐도 만화방창이다.

풀내음과 꽃향기는 지천에서 날리고 춘광(春光)은 각양의 색으로 눈이 부시다. 그래서 오월을 일컬어 계절의 여왕이라 불렀나 보다.

동네 어귀에 들어서니 화등잔에서 타오르는 불꽃같은 장미꽃이 여기저기 피어났다.

서슬 퍼런 가시만 겨우내 서리서리 감고 있던 등걸 사이로 봄 햇살 받고 여린 촉을 틔우는가 싶더니 어느새 붉은 장미 송이를 담장 위로 흐드러지게 터트려 놓았다. 진초록 잎새들과 붉디붉은 장미의 어울림이 황홀할 만큼 곱다.

삼백예순 날, 늘 내가 오가던 길섶을 만개한 장미꽃잎이 떨어져 붉은 꽃길을 만들었다. 나만을 위해 내어준 양탄자 꽃길인 양 도취해 꽃잎들을 즈려밟고 천천히 걷다 보니 불현듯 아득히 멀어져간 그 옛날 오월이 떠오른다.

그새 삼십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오늘처럼 장미꽃이 흐드러지고 초록이 물결을 이루던 청초한 날, 머리에 하얀 베일을 쓰고 나는 오월의 신부가 되었다.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걸어야 하는 삶의 참맛도, 무게도 어떠할지 미리 두드려보지 않았다. 풋풋한 설렘만 가슴에 품고 결혼이란 굴레 안에서 숱한 오월을 함께 맞이하고 보내며 달려온 세월이 어느덧 불혹이란 연륜을 목전까지 쌓은 셈이다.

혼자가 아닌 둘이 만든 둥지 안에서 자식의 탄생과 성장하는 기쁨을 만끽했고 또 그 아이들을 출가시키며 튼실한 손주도 둘이나 얻었다. 때론 덜컹거리면서도 딱히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잘 견디며 달려온 뒤안길이니 감사하다 스스로 축복해도 될까.

어느덧 만화방초 오월이 와도 설렘으로 요동치던 새색시의 야단스러운 열정보다는 은하수 별빛 같은 고요한 날이 내 가슴 안에는 더 많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 둥지에서 서른아홉 번 세월의 고개를 넘나들며 굳어진 삶의 딱정이는 그와 내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서로의 버팀목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자양분이 돼주었다.

오월이 오는 길목에서 어찌 훈풍만 불었을까. 가뭄도 만났고 춘설도 견디며 왔기에 오월은 야단스럽지 않고 그윽하게 더 빛이 나는 건가 보다. 삼십구 년 전에 꽃이 피었다 진 그 자리에서 함박꽃을 닮은 딸들이 피어났고 또 그 딸들은 손주 둘을 열매로 맺어 우리에게 안겨주었으니 흘러간 세월이 덧없다 해도 가히 서글프진 않다. 철 따라 아름다운 꽃은 피고 지듯이 함께한 시간은 오월의 역사로 내 안에 다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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