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미정 대전도안중학교 교사

고민이 있고 인간 관계에 어려움이 있을 때 대부분의 아이들은 내면의 혼란과 고민을 아무렇지 않은 척 감추고 살아간다. 그러다 오해가 풀리기도 하고 시간이 해결해 주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원래의 자리로, 얼굴로 자연스럽게 돌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녁 어스름처럼 마음의 아픔이 저절로 번져나오는 것이 보이는 아이들도 있다.

힘 없는 눈빛, 느린 동작, 머뭇거리는 태도. 아이에게 저절로 눈길이 가게 되고 책 읽는 모습, 발표하는 모습을 눈여겨 보게 된다. 쉬는 시간에 교실에서 머무르며 그 아이에게 말을 걸어 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그 아이의 고민을 들을 때 마음속에서 아! 하는 아쉬움의 탄성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아이들이 겪고 있는 고민의 부피와 무게가 아이에게는 마음을 가눌 수 없을 만큼 무거운 것이지만 어른이면서 교사인 나에게는 아주 조금의 개입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종류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내가 종종 아이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어떤 학생이 똑똑한 사람일까. 이런 저런 대답이 나온다. 공부 잘 하는 아이, 맺고 끊는 것을 잘 하는 아이, 눈치 빠른 아이. 다 정답이다. 내가 생각하는 정답은 도움을 요청할 줄 아는 아이이다.그러면 교실의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지금 내가 안고 있는 문제가 너무 크고 무거워 숨도 쉴 수 없을 것 같지만 선생님이나 가족에게 한 번이라도 도와달라고 말했으면 좋겠다라고 첨언한다. 그런 아이들이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아이라고 말이다. 심지어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라도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똑똑한 아이라고 말이다.

학교라는 곳은 너무나 소중하고 중요한 곳이다. 교육기관으로서도, 성장 단계에 중요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서도 말이다. 그럼에도 가끔 학교라는 곳이 주는 숨막힘이 있다. 성인이 됐을 때 사회라는 곳은 이렇게 같은 나이의 사람들로만 구성원이 있는 곳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성인이 되어 우리가 경험하는 사회는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동갑인 구성원을 찾기가 더 어려운 곳이다.

그런데 학교는 나와 똑같은 나이의 사람들만으로 꽉 차 있는 특별한 곳이다. 그때 그 관계는 수평적이기 어렵다. 친구와의 작은 갈등만으로도 갑자기 나의 주변에 투명한 벽이 생긴 것 같은 단절감을 쉽게 느낄 수 있기도 하다.

어른에게는 쉬워보이고 별 것 아닌 것 같은 사소한 문제들, 그러나 학생들에게는 문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상황에서 한 번만이라도 손을 뻗어 도움을 요청하기를 바란다.

입을 벌려 말하기조차 힘들다면 지금 눈 앞의 어른을, 선생님을 좀 더 오래 집중해 쳐다봐 주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어른이란 교사란 너의 도움에 즉각 응답할 마음의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어른들은 우리의 아이들을 좀 더 오래 바라봐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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