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임선 시인·국제PEN한국본부 충북지역위원회 회장

계절의 여왕이라 부르는 5월이다.

가정의 달, 보은의 달, 이래저래 이름이 붙은 날이 많다.

베이비부머 세대인지라 어린이날 특별한 선물이나 축하받은 기억은 없다.

어버이날은 미술 시간 색종이로 만든 카네이션에 "어버이 은혜 사랑합니다"는 리본을 달아 가슴에 달아드렸다. 조부모님과 삼촌 고모들까지 삼 대 10여 명의 대가족이 살았기에 동생들과 카네이션 4개를 만들어 할아버지 할머니 가슴에도 달아드렸다.

가슴에 꽃을 달고 자랑스럽게 마실 다니시던 할머니에 비해 꽃을 달지 못한 이웃집 할머니는 의기소침해 방문 출입을 하지 않으셨다. 눈치 빠른 친정어머니는 슬그머니 당신 가슴의 꽃을 달아드리고 위로를 해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훗날 카네이션에 연연하지 않는 할머니가 되어야지 생각했다.

어느새 조부모님 부모님 모두 돌아가시고 손주의 카네이션을 받는 나이가 되었다. 삐뚤빼뚤 색연필로 내 얼굴을 그려서 "할미 사랑해요." 꽃 대신 손주들의 사랑 편지를 받는다. 히죽히죽 세상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하지만 가슴 한편 허전하고 쓸쓸하다. 친정 부모님은 평균 수명보다 일찍 돌아가셨기에 삶에 지치고 힘든 날은 유난히도 친정엄마가 보고 싶어진다. 그러다 퍼뜩 정신 차리고 보면 허공에 대고 얘기를 하고 있다.

친정엄마가 쓰러지셨다는 남동생의 전화를 받고, 급히 병원으로 갔지만 이미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셨다. 그 당시 충격을 이겨내지 못해 지인들의 상가(喪家)에 조문을 갈 때면 고인의 영정사진이 친정엄마의 영정으로 보여 상주들보다 더 슬피 울어 민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수개월이 지나도 그 증세가 이어져 상담받았다 내 안에 미해결된 슬픔이 고여 있어서 그렇단다. 그런 나를 알기 위해 심리상담을 공부하였고 내재한 슬픔을 집단 상담을 통해 해결하는 방법을 알았다.

가끔 부모님의 긴 병에 뒷바라지가 힘들다고 고충을 털어놓는 지인들에게 내 얘기를 해준다. 그런 고민을 할 수 있는 것조차 행복이고 내겐 부러움의 대상이라고 말이다.

온 가족이 모이는 시간이면 내가 며느리이고, 딸이 되고 싶다. 카네이션 사 들고 친정엄마와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엄마 얼굴에서 나이 든 내 얼굴을 확인하는 시간을 향유하고 싶다. 가족들의 구심점이 되어야 하는 자리이기에 위, 아래의 균형과 포용력이 요구되는 지금 나의 자리. 요즘처럼 결혼 절벽. 출산 절벽 시대에 손주들의 웃음소리와 재롱이 기쁘다가도 카네이션 사 들고 찾아갈 친정 부모님의 부재가 웃어도 웃을 수만은 없다.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다는 현실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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