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란 수필가

이천 강의를 하러 갔다 접촉 사고가 있었다. 건물 지하 주차장에서 나오다 중앙선을 두고 진입하는 자동차와 부딪쳤다. ‘거리두기’위반이다. 운행에는 지장이 없을 듯 했지만, 청주로 내려가야 하니 점검해 보려고 카센터로 향했다. 가는 도중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도착해 보니 앞바퀴를 감싸고 있는 물받이가 깨져 자동차 바퀴와 부딪치는 소리였다.

물받이는 비가 오면 물이 사방으로 튀어 발생하는 피해를 줄이는 장치이다. 물받이와 바퀴 사이에는 완충지대가 있다. 완충지대란 충돌이 일어날 때 필연적으로 따르는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설치하는 중간지점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완충지대를 쉽게 볼 수 있다. 차음장치는 고속도로 옆 주택가나 학교 주변에 설치해 소음과 진동을 최소화하고, 완충녹지는 대기오염과 공해로부터 사람들의 피해를 최대한 줄인다. 나라 간에도 무력 충돌이나 전쟁을 예방하기 위한 비무장지대가 있다.

완충지대는 ‘거리두기’이다. 산을 오르며 마주하는 나무들은 하나같이 ‘거리두기’를 한다. 높고 낮은 나무들, 넓고 좁은 잎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조화를 이룬다. 서로의 성장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다. 텃밭에 심은 채소도 촘촘히 올라오면 솎아 웃자람을 막고, 과수원에 맺은 열매도 곁가지를 자른다. 적당한 거리 확보는 영양분을 나누어 싱싱한 채소와 튼실한 열매를 맺게 한다.

인간관계에서‘거리두기’는 관계의 완충지대이다. 적당히 친할 때는 긍정적인 부분만 보이지만, 가까워지면 부정적인 면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연인이나 부부간에도 지나친 간섭으로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엇박자가 나오듯이 말이다. 우리 몸도 신체의 균형을 이루려 완충지대를 만든다. 잠이 부족하면 졸음이 밀려오고, 피곤하면 쉬고 싶고, 무리했다 싶은 날이면 몸살이 난다. 신체리듬을 감시하는 자동조절 장치이다.

완충지대는 스스로 만드는 공간이다. 삶이란 성공을 위한 질주만은 아니다. 인생의 수레바퀴는 자신만의 고유의 영역이 확보되어야 앞으로 나아간다. 서로를 들여다보는 일, 마음에 여백의 공간을 만드는 일, 누군가가 내 삶 속으로 들어올 자리를 마련하는 일, 모두가 내 삶의 완충지대이다.

내 마음에 완충지대를 수시로 만들어 볼 참이다. 그곳이 새로운 시작이고 희망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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