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각 김용각건축사사무소 대표

어린 시절, 필자가 살던 동네는 소위 ‘신작로’라 불리는 큰 도로가 있는 시내 중심가였다. 당시는 아파트문화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길을 따라 각양각색의 주택들이 다양한 모습과 형태로, 사는 형편의 모습을 여과 없이 노출하고 있었다. 빈곤의 시대였지만 공간 속 삶의 모습은 여간 정겨운 게 아니었다. 이웃과의 나눔은 너무도 친근하여서 떡·김치·두부 등의 음식은 물론 입던 옷들과 생활용품과 심지어는 급전까지도 스스럼없이 나누며 서로의 삶을 공유했었다. 오븐이 귀하던 시절에 어머니께서 하루 종일 구워내는 카스테라는 이웃들에게 인기만점이었던 기억, 손맛 좋은 옆집 아주머니 댁에서 여러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먹던 비빔국수의 맛은 필자의 보물 같은 추억이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도시화가 가속되고 밀집된 사람을 수용하는 아파트가 출현하면서 우리의 주거 환경은 급속도로 변화되었고, 이제는 아파트시대가 되어 자신의 형편에 맞는 주거단지의 비슷한 사람들과 살아가게 되면서 바쁜 일상과 단절된 주거형태는 이웃과의 소통과 공동체의 역할을 축소시켰고, 옛 추억으로 던진 눈빛 인사는 회피하는 뒤통수에 묻혀버리는 쑥스러움이 되어버리기 일쑤였다.

같은 통로 엘리베이터 속 침묵이 너무도 싫어 마구 던지는 나의 인사에 이웃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6층 아이와 아빠는 짧은 몇마디의 안부도 나누는 사이가 되었고, 11층 맞은편 부부의 텃밭 작물과 아내의 수제 쿠키는 수도 없이 주고받는 애정표현물이 되었다. 작년에 이사 온 옆집 가정은 조카뻘임에도 불구하고 형님동생 사이가 되어 차담회도 하고 스크린 골프도 하며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 지내보니 다들 같은 마음으로 함께 나눌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함을 확인하면서 우리의 삶이 너무나 나와 내 가족 위주의 협소한 ‘담’을 두르고 살고 있지는 않는지, ‘존중’이라는 미명아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자 하지는 않았는지 뒤 돌아 본다. 다들 유년시절의 나눔을 기억하고 있기에 더 쉽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요즘, 국가적으로 일인가구나 신혼가구를 위한 청년주택의 공급이 자자체별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 코로나펜데믹으로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서 현재 공급되는 일인 주택의 열악한 공간의 문제가 대두되었지만, 큰 변화 없이 지속적으로 양산되는 느낌이다. 미래세대의 청년들이 함께 소통하고,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의 제공이 절실하다.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좀 더 풍부한 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공유의 공간’이 존재하는 주거 유형의 개발과 보급이 시급하다. 보다 나은 미래는 이 청년들의 경험을 통해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기성세대인 우리가 가지고 있는 좋은 경험과 추억을 떠올려 현재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제공해야 하는 의무가 있지는 않을까 고민해 본다. 국가공인건축가인 건축사로서의 사회적 역할이 좀 더 확장되고 활발해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더해 본다. 소중한 우리의 추억을 모아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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