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균 ETRI 기술창업실 책임연구원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여파 등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이 커지면서 올해 1분기 벤처투자가 급감했다. 또한 작년부터 구글, 아마존, MS를 비롯한 대다수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잇따라 인력감축 및 투자보류를 선언한 것은 경기침체를 대비한다는 방증이다. 작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고물가, 고금리, 인플레이션, 원자재 급등 등으로 인해 국내·외를 막론하고 가계, 기업, 정부 모두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벤처 캐피탈(VC) 등 투자업계 역시 리스크 회피 및 보수적 투자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예금 금리가 5%를 넘는 상황에서 굳이 위험을 떠안고 투자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즉, 차리리 곳간 문을 닫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일례로 최근 시리즈 B 투자(기업가치 5백억원 규모)를 진행하고 있는 최첨단 유망기업이 시리즈 A 규모로 다운 라운드(Down Round: 이전 라운드 기업가치보다 낮게 평가돼 투자받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분위기다. 기업가치를 더 낮게 평가받더라도 투자 유치를 통해 급한 불을 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업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 걱정이다. 물론 2021년 이후 고평가된 기업가치가 적정 시장가치로 조정되고 있어, 벤처생태계 자정의 기회라는 견해도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이런 분위기를 대변하듯 벤처기업 투자규모는 2020년 4조 4000억원, 2021년 7조 7000억원, 2022년 6조 8000억원 투자가 이뤄졌고, 2023년 1분기 투자액은 전년 동기 대비 60% 감소한 8815억원 이었다. 정부 고위관료도 "금리 등 대외 경제 불확실성과 2021년 이후 크게 상승한 기업가치를 고려할 때 단기간에 투자심리가 급반등할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한 바 있다. 국내·외 경제상황이 녹록치 않지만, 딥테크·딥사이언스 같은 혁신기업의 씨앗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선제적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필자는 다시 한번 역동적 벤처생태계 강화를 위해 다음과 같이 각 경제주체별 역할을 제언 드리고자 한다.

첫째, 정부는 모태펀드와 같은 혁신 모험자본 확대를 통해 보다 많은 벤처기업이 수혜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 정부는 마중물이자 촉매자이다. 민간투자 유입도 중요하지만, 어려울 때 일수록 과감한 정부재원 투입이 어느 때 보다 중요한 시기이다. 미국 경제가 위기를 겪을 때, 역동성 있는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이 살린 것처럼 역동성 있는 한국 벤처기업이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과감한 선제적 지원이 필요하다.

둘째, 투자자인 벤처캐피탈의 좀 더 공격적 투자가 요구된다. 과거처럼 벤처기업에 대한 지나친 옥석가리기 전략 보다는 미국 벤처캐피탈처럼 공격적 자본 운용이 필요하다. 벤처캐피탈은 모험투자자이다. 그런데 모험은 하지 않고 안정적·보수적 투자만 한다면 결국 투자자나 기업 모두에게 해(害)가 될 것이다. 셋째 벤처기업은 핵심 역량 집중이 필요하다. 기업은 생물체이다. 고평가된 기업가치 조정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고, 비핵심 사업영역은 과감히 버리고 핵심 비즈니스에 집중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혹한기에는 체력을 비축해 봄을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넷째, 정부 출연연은 벤처기업에 대한 과감한 기술문호 개방과 성장지원책을 가동해야 한다. 미국 35대 대통령 존 F.케네디가 한 명언 중 "중국인은 ‘위기(危机)’를 두 글자로 씁니다. 첫째자는 위험의 의미이고, 둘째자는 기회의 의미입니다. 위기 속에서는 위험을 경계하되, 기회가 있음을 명심하십시오"라고 했다. 벤처기업에게 지금의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역동적 벤처생태계 조성에 각 경제주체가 발 벗고 나서야 할 시기인 것 같다. 너무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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