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옥 수필가

사월은 어딜 가나 만화방창이다.

눈이 부시도록 화려하게 피어나던 꽃들도 봄비 한 줄금에 꽃잎을 하나둘 떨구더니 꽃 진자리마다 초록의 잎새를 내밀고 있다. 화단 한 자락에 있던 명자꽃 한 무더기 아래로 화려했던 시간의 흔적인 양 떨구어진 꽃잎들이 발갛게 머물러있는 풍경이 그지없이 곱다.

낙화가 더 붉고 향기롭다.

무리 진 꽃잎들을 즈려밟고 한 줌 집어 바람에 날려본다. 허공을 향해 날리는 분분한 꽃잎이 친구의 음성처럼 애잔한 환영이 되어 그 자리를 맴돌다 도루 떨어진다.

"꽃이 필 때도, 꽃이 질 때도 먼저 간 아내가 몹시도 그립다."

오랜만의 안부를 묻는 통화에 유년을 함께한 고향 친구는 덤덤한 듯 무심하게 심정을 토로했다. 그 순간 홀로된 친구에게 어떤 부드러운 단어를 동원하여 어쭙잖게 위로한다 한들 어불성설인 것 같아 말문이 막혔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가슴안에서 찬바람이 훅 지나간다.

살구꽃 피던 고향마을은 산등성이마다 푸름이 한층 더 짙어지더라는 엉토당투한 말로 화제를 돌리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지만, 자꾸만 친구의 목소리가 바람결처럼 귓전을 맴돈다.

부부는 두 개의 반신(半身)이 아니고 하나의 전체가 되는 것이라 했다. 부부는 늘 함께하는 것이고 영원한 거라 믿어오던 내가 혼자된 친구의 심정을 전해 듣는 순간 말문이 탁 막히며 가슴에서 바람이 지나간다. 언젠가는 나도 부부라는 전체에서 반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생각지 않고 무심하게도 숱한 세월을 살아왔나 보다.

아무런 혈연도 없으면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나 혈연의 창조자도 되었고 수십여 년의 세월의 풍파를 넘나들며 감정은 무뎌져 늘 그 자리에 있는 당연한 사람으로만 대했다.

어느 순간이든 결국은 가장 믿고 의지하는 내 편이 부부인데 영원이란 시간만은 둘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여태껏 인지하지 않고 살던 세월이 덧없는 것일까.

둘이면서 당연한 하나인 듯 아주 덤덤하게 살아온 지난날들이 지극히 평범해 보였지만 혼자가 아니어서 누릴 수 있는 값진 행복이었음을 새삼 감사하다.

홀로된다는 것은 참 외롭고 쓸쓸한 것이리라.

외롭고 쓸쓸했던 겨울을 잊고 기어이 꽃과 푸른 잎사귀를 피워내는 짧은 봄날처럼 친구가 혼자라는 계절을 벗어나 인생의 푸른 잎을 넉넉히 피우길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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