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동혁 ETRI 지능형스몰셀연구실 선임연구원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생활기록부 진로희망란에 과학자란 단어를 미심쩍은 표정으로 쓰고 있으리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필자도 결국은 과학자 내지 공학자라는 단어에 부합하는 직업을 갖게 됐지만, 어릴 적부터 그런 꿈에 대한 확신을 가졌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수학과 과학에 대한 흥미와 관심만큼이나 컸던 것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흔들리는 마음을 따라 생활기록부상의 진로희망도 수학자, 연구원 등에서 회사원, 공무원 등으로 바뀌곤 했다.

그러나 결국 누군가는 과학자가 된다. 그리고 필자가 그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수학과 물리학에서 오는 깨달음에 대한 순수한 즐거움을 여전히 느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한 즐거움이 과학자가 되는 충분조건은 아닐지언정 필요조건은 된다고 생각한다. 너무 어렵게 말할 것도 없이 ‘재미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과학자가 되는 길의 문턱은 넘어섰다고 생각하면 된다. 즐거움은 다분히 주관적인 영역이지만 과학자가 되는 길에서의 가장 큰 요소이기도 하다.

문턱을 넘어섰다면 이제 기초체력을 다질 차례이다. 과학은 측정 가능한 것들에 대한 학문이고 측정한 것을 다루는 방법론들은 대부분 수학에서 온 것이므로 이공계에서 수학은 마치 국밥과도 같은 존재이다. 아침 식사로 과자를 먹더라도 동네 뒷산 정도는 다녀올 수 있겠지만 험준한 산골짜기 깊숙이 탐험하고 싶다면 든든한 국밥은 필수이기 때문이다. 특히 접근방법이 일률적으로 정립돼 있지 않은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할 때에 수학적 지식은 시행착오를 줄이고, 새로운 발견에 더 빨리 도달하게 만들어 준다. 그다음으로 기초체력에 필요한 요소는 영어라 생각한다. 전문적이고 세부적인 분야로 들어설수록 관련된 정보의 절대량은 점점 줄어든다. 이때 영어로 된 자료들을 큰 어려움 없이 접근할 수 있다면 정보를 취득할 때에 선택지가 엄청나게 넓어진다. 어느 정도 기초체력이 준비됐다면 세부 연구 분야에 대한 걱정이 남을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이 구체적이지 않고 두루뭉술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대학교에서 선수과목을 이수해보기 전까지 각 세부분야에 대한 자신의 재능이나 흥미도를 정확히 가늠하는 것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부분에서는 구체적 지식보다 맹목적인 흥미가 꺾이지 않는 마음을 지키는 데에 도움을 준다. 매일매일을 충실히 살아간다면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이미 자기 자신의 강점과 재능을 충분히 잘 알고 있게 될 것이다.

만약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해보았다면 즐거움이 이끄는 대로 몸을 맡겨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스스로의 생각을 유치하다거나 막연하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글에서는 어떻게 과학자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더 많이 썼지만 사실 왜 과학자가 되고 싶은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냥 단순한 마음으로 재미있다면, 즐겁다면 연구자의 길로 들어서길 권하고 싶다.

운명의 흐름이 다른 직업의 세계로 데려갈 지도 모르지만, 마음 한 켠에 과학자가 되고자하는 꿈을 잊지 않는다면 이미 절반쯤은 과학자가 됐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시작하는 청소년 과학자들을 응원하고 또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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