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 시인(대전대학교 혜화 리버럴아츠칼리지)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시각은 몸을 통해 세계와 연결되며 문학과 긴밀히 얽혀있는 지배적 감각이다. 우리는 시각적 은유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시각적 은유가 널리 퍼져있다는 것은 보는 시각에 따라 리얼리티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방해가 될 수도 있고,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시인은 눈이 밝아야 한다.

시인은 자기 앞에 타자와 세상을 제대로 보기를 원하고 잘 보이길 욕망한다. 그리고 이를 어떻게 발현할까를 생각한다. 과연, 기만 없이 세상을 볼 수 있을까? 시인은 세상을 보는 시각과 스스로를 보는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보는 방식을 바꾼다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시각의 특권화가 초래한 시각의 불확실성은 과장과 왜곡 등으로 문학에 파고든다. 시인은 시각의 기만을 드러내어 다른 감각에 주목하고, 정신과 몸 사이의 경계를 흐리는 시각의 권력에 노출되는 위험을 비판해야 한다. 또한 뿌리 깊은 시각중심주의에 대한 다양한 반시각적 도전과 저항을 제시해야 한다. 시각으로부터 살아남으려면 한눈에 보는 것을 끝내야 한다. 그 잔재로부터 무언가를 구해내는 게 詩人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 보이기 때문에 알려진 것들은 이미 정보가 날아간 세계 위에서 공허하게 내려다보는 것, 사라져 가는 구경꾼들이 모이는 공원일 뿐이다.

본다는 것에는 타자를 보는 것만이 아니라 경청과 접촉 그리고 어루만짐까지 포함한다. 보는 것을 먼저 하지 않고, 듣고, 냄새와 공기를 들이마시고, 소리를 포착하면 시각의 세계에서 해방된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여기에 언어를 덧입힐 때 은유의 힘이 생길 것이다. 문학은 죽어있는 것을 살리고 깨우지 못한 것을 깨우는 힘이 있다. 글은 쓰는 사람의 의도도 중요하지만 읽는, 보는, 듣는 사람이 동감, 교감, 향감 등등이 함께 해야 작품의 제값이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詩作에 정도란 있을 수 없다. 마치 미로 속을 헤매거나, 나그네처럼 떠돌아다닐 때도 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것은 한 편의 詩가 주는 감동, 그리고 우리의 삶에 사색과 각성을 주기 때문이다. 시 쓰는 일은 신조차 부러워할 일이라고 한다. 때때로 눈을 감고 보는 것, 이것이 시적 여정을 위해 가장 적절한 종착역일 것이다. 기린처럼 걷는 저녁, 지상에 발을 딛고 있지만 하늘로 걸어가는 나무들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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