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순(1960~ )

 

돌쩌귀 언 창가에 기름등잔 고왔어라

엎드려 그해 겨울 다시 쓴 놀뫼평전

닭 벼슬 잠들었을 때

옛글에게 덤볐어라

눈 덮인 마당귀에 두어 권 펼쳐놓아

밤늦도록 환한 밤 처마 끝 감아 도는

내 곁에 눈물겹고 나,

북향집에 홍매화

돌쩌귀 창가 기름등잔 닭 벼슬 옛글 마당귀 처마 북향집에 홍매화 활짝 피었어라. 민족 심성의 가파른 결기를 품고서 북풍한설에 더 붉디붉게 피어나는 홍매화렷다. 이제 곧 그 맵고도 독한 향이 퍼지며 천지를 진동할 터인즉. 이 풍파세월에 정신 흐려진 벗님네들 눈 더 크게 뜨고 똑바로 차렷 해야겠어라. 만해스님께서 일제를 미워해 남향을 접고 북향으로 집을 지었다 하였거늘. 시인의 정다운 집은 마을의 지형으로 북향의 문을 내었다 하는데. 그 개성의 터전으로 집을 세워 한껏 독특한 향으로 피어나는 눈 속의 홍매였거니. 그러니 시인은 어둠에도 더 밝게 깨어나 그해 겨우내 놀뫼평전을 다시 썼어라.

한 문학소녀 시조를 꿈꾸던 날의 절절한 마음이 저 홍매 향기 속에 민족혼으로 스미었도다. 부지런한 닭들도 일찍 횃대에 올라 벼슬을 묻고 잠든 때. 비로소 시인은 깨어 눈 덮인 마당을 환히도 밝히었으니. 반딧불이 모아 어둠을 밀어내던 그 손길로 눈 빛 더하여 형설지공을 완성하는 순간. 그 즈음이면 닭도 깨어 힘차게 지축을 뒤흔들었을 것이다. 광야의 첫 닭울음소리로 퍼져 올랐을 것인즉. 북향집과 홍매화. 이는 외롭고도 높은 깊고도 고독한 심사의 그 잔영이어니. 눈 뿌리는 날이면 홍매의 향기 더 높았어라. 눈 감으면 화안히 열리는 북향집. 뜰팡에 올라서면 돌쩌귀 언 창가에 기름등잔 참으로 고왔어라. -김완하(시인·한남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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