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연 천안희망초등학교 교장

해가 짧고 밤이 긴 겨울이 오면 얼어붙은 논길을 걸으며 손전등을 들고 마실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사랑방 화롯가에 둘러앉아 고구마와 떡가래를 구워 호호 불며 먹던 생각이 난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길옆에 삐죽이 올라온 삐비를 뽑아 들고 조심스레 껍질을 벗겨 먹으면 달착지근한 맛이 그만이었다. 통통하게 올라오는 찔레 새순을 꺾어 먹으면 달콤함이 좋았었다. 어릴 적의 그리움을 먹고사는 것이 우리들의 삶인 것 같다. 이제 꽃들이 피어오르는 봄소식이 기다리고 있다. 해마다 이쯤이면 봄꽃 향기와 함께 하늘로 올라가신 어머니 생각이 절로 난다. 어머니는 자신은 돌보지도 않으시고 오직 자식을 위해 헌신적으로 사셨다. 나는 어머니의 헌신적인 베풂이 당연한 것처럼 제대로 보답도 못 해드리고, 투정까지 부려가면서 사랑을 받고만 자랐다. 그런 어머니가 오늘따라 더 그립다.

인간은 누구나 그리워하는 본능이 있다. 윤동주 시인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사무친 분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시로 승화시킨 그는 별로 이미지화해 표현했다. 별을 추억, 사랑, 쓸쓸함, 동경, 시, 어머니 등으로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하나씩 빗대어 표현하며 불렀다. 그리움은 지나간 일을 돌아볼 때 생기는 감정이다. 지나온 발걸음을 돌아보는 행위, 그리고 그 돌아보는 마음에 조금의 기대감이 섞여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그리움이라고 한다.

그리움과 비슷한 감정이 있는데 그것은 설렘이다. 학창 시절의 수학여행 전날, 무엇을 해도 재미있을 것 같고 어떤 음식을 먹어도 맛있을 것 같은 그런 기대가 머릿속을 꽉 채워서 쉽사리 잠이 오지 않던 밤이었다. 그날 밤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그려보고, 그 미래에 자그마한 기대의 설렘이 마음속에 가득 찼다. 그리움과 설렘은 기대하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그 기대감의 방향에 따라 우리는 때로는 설렌다고, 때로는 그립다고 말하는 것 같다.

우리 아이들에게 그리움은 어떤 것인가? 우리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지금이 지나면 그리움의 과거가 될 수 있도록 해 줄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인가? 아이들이 그리워할 과거는 무엇인가? 우리가 어떤 목소리와 행동으로 아이들의 그리움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인가? 삶을 즐겼던 그 순간순간이 그리움이 되고, 그 그리움이 현재의 위로가 되어 다시금 힘을 내도록 하는 것처럼 아이들에게도 일상에서 즐기고 누렸던 그 시절의 그리움을 가질 수 있도록 하려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그리움에 쏟아지는 기대는 내가 지나쳐오고 설레었던 것들이다. 아이들이 자신들의 기대를 조금만 돌려서 앞으로 향하게 한다면 매일매일 설레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요즈음의 교육은 AI교육과 메타버스 등의 에듀테크를 강조하고 있다. 첨단 교육기법도 좋지만, 아이들에게 그리움을 간직하도록 심어주는 교육, 그리움을 갖게 하는 교육이 절실하다. 그리워할 줄 아는 아이가 행복하고, 그리워하는 만큼 만족한 삶을 산다고 한다. 이제 그리움을 심어주는 교육도 펼쳐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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