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각 김용각건축사사무소 대표

이른 아침, 촉촉이 젖은 대지의 온도가 마치 봄날이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살짝 내린 차창너머 습기를 잔뜩 품은 시원한 내음의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며 겨울의 막바지를 느껴본다.

이틀 전,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은 코로나19에 따른 세계 보건 비상사태가 지속되고는 있지만 팬데믹은 올해 거의 끝물로 접어들 것이라고 낙관했다. 홈쇼핑을 비롯한 다양한 매스컴에서는 해외여행 상품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비행기에 몸을 고 부지런히 해외로 나가고 있다. 단체로, 개인으로, 관광으로, 골프로, 문화기행으로, 종교·문화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세계 각지로 흩어져 나간다.

그 여행의 중심에는 각 나라의 시대별 건축물이 주요 관광요소로 손꼽히고 있다. 파르테논신전이나 피라미드, 바르세이유궁전, 쾰른성당같은 고대 건축물부터 롱샹교회,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성가족성당, 베를린국립미술관, 킴벨미술관 등의 근대건축물 그리고, 안도타타오, 자하하디드, 프랭크게리, 페터춤토르를 비롯한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활발한 활동으로 만들어긴 세계 도처의 건축물들이 많은 관광객들의 환호를 자아내고 있다.

국내의 반응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삼국시대부터 이어온 고건축과 유물들은 충분히 세계적인 관광요소로 부각되어 있지만 국내 건축가의 작품이 세계적인 이슈를 가져온 것은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다. 심지어 국내의 주요 건축관광지의 건축물들은 거의 외국 유명건축가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 전 경북 예천군에서 추진 중인 박서보미술관의 경우 화백의 요청으로 세계적인 건축가인 페터춤토르의 참여를 조건으로 업무협약을 맺었으나 공모방식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건축가의 거절의사로 공모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건축물의 특화는 반드시 유명 건축가의 전유물일까? 약 3년전에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시설’을 건립하기 위한 국제설계 공모를 주관하는 부처의 자문위원으로서 그 과정에 참여하여 총 42개국에서 109팀이 참여를 하여 유럽, 아시아, 미주에서 참여한 심사위원의 엄밀하고 공정한 심사를 거쳐 한국의 젊은 건축가그룹이 당선되는 것을 보며 무척 상기되었던 기억이 있다. 한국의 건축가들도 세계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충분히 느끼게 되었는데 실시설계 과정에서 초기의 건축개념들을 위협하는 다양한 행정적 절차와 관계자의 의견을 배제하는데 무척 어려움이 많음을 경험했다. 외국의 유명건축가의 경우 그런 과정에 노출될 경우 분명한 거절의사를 표하기 때문에 원안 그대로 완공될 수 있겠지만 국내건축가는 그런 존중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느껴진다.

그뿐만 아니다. 민간건축의 경우 대가 기준의 부재로 공공건축 설계대가의 20% 수준의 대가를 받고 창작행위를 하고 있는 현 실정이 국내건축가의 세계화를 더욱 더디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당한 대가도 없는, 정당한 존중도 없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묵묵히 버티고 있는 수많은 건축가의 바람은 마음껏 창작할 수 있는 시간과 그에 상응하는 대가와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건축토양이 형성되길 바라는 것이다. 의무가입 원년의 시작은 새로운 환경 속에서 품고 있던 꿈을 그려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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