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수 ETRI 기업성장지원부장

올해는 토끼의 해 여서인지 토끼와 관련된 덕담이 여러 곳에서 전해져 온다. 토끼처럼 화목하고 번성하는 한 해를 기원하기도 하고, 뒷다리가 긴 토끼처럼 높은 언덕도 잘 오르라고 격려하기도 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런 덕담이 사람의 입을 통해서 전달되기보다 이메일이나 카톡과 같은 SNS를 통해 대부분 전달한다는 점이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들어온 글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토끼풀에 관한 이야기다. 토끼풀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토끼가 잘 먹고 좋아해서라고도 하고 토끼꼬리 같이 동그란 꽃이 피어서라고도 한다. 이 토끼풀에 대해 세계 26개국 160개도 287명의 학자가 국제공동연구팀을 만들어 연구한 적이 있었다. 연구진은 아주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토끼풀이 지닌 ‘사이안화수소’라는 물질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 결과 농촌에서 자라는 토끼풀에는 초식동물이 싫어하는 이 화학물질이 아주 많이 생성돼 있었다. 반면, 도시에서 자라는 토끼풀은 이를 덜 생산하는 쪽으로 진화해 있었다. 게다가 토끼풀 2,074개의 유전체를 분석해보니 놀랍게도 도시에서 자라는 토끼풀과 농촌에서 자라는 토끼풀은 자라는 위치에 따라 확연히 다르게 적응하고 있었다. 마치 토끼풀이 ‘여기는 토끼도 없고 초식동물도 별로 없는데 우리가 왜 힘들게 화학물질을 생산하겠어? 차라리 그 힘을 공해에 버티게 하는 데 쓰는 게 낫겠어!’라고 생각이나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이 글을 쓴 이는 토끼풀도 이렇게 스스로 변화에 적응해 나가는데 우리가 못 할 이유가 없다며 환경의 변화에 기죽지 말고 잘 이겨 가라고 격려의 말을 담아 마무리했다.

경제도 그렇고 물가도 그렇고 그 어느 것 하나 녹록지 않은 위기 상황 앞에서 이러한 격려의 글은 자칫 환경이 짓눌러 위축될 뻔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다시 힘을 내게 만들어 준다. "그래, 위기에 굴복하기보다는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삼아야지, 그리고 어려움을 호소하는 기업들을 만나면 이 ‘토끼풀 스토리’를 들려주며 그들도 힘을 내도록 해 주자!"라고 마음을 다졌다. 그런데 마음속에 문득 이런 질문이 불쑥 찾아왔다. "도시에 사는 토끼풀이 사이안화수소를 덜 생산하는 것이 과연 변화된 도시 상황이 두려워 그랬던 것이었을까? 어쩌면 그것보다는 농촌 속에서는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안정감이 그들을 새롭게 진화할 수 있도록 하지 않았을까?"

막상 이 질문을 마주하니 변화하는 환경을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역할을 할 수 있는 두 가지의 방법이 있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철저하게 약육강식의 철학을 대변하면서 끊임없이 다가오는 위기 앞에서 빨리 변화하도록 강요하는 방식이 있고, 위기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기보다는 공동체적 관점에서 위로와 안정감을 제공해 스스로 변화의 길로 나아 갈 수 있게 격려하는 방식이 있다. 두 가지 방식 모두 변화의 길로 나간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변화의 동기는 크게 다르다. 위기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냐 아니면 안정감에 기반한 긍정적 도전이냐의 차이다.

위기 상황에 대응한 변화는 어쩌면 피할 수 있는 명제인지 모른다. 그러나 변화의 방식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이왕이면 그 변화의 방식이 어깨를 도닥이는 안전판이 돼 다시 딛고 일어설 수 있게 힘을 주는 동반자가 됐으면 좋겠다. 정부출연연구원의 기업성장지원이 지금같은 위기 상황에서 취해야 할 입장이 이와 같을지 모른다. 기업의 어려움을 나누어 지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갈 수 있게 도와줄 때, 정부출연연구원은 기업의 입을 통해 진정한 기업성장의 동반자였다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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