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강본 한국교통대 스포츠산업학전공 교수

스포츠는 때론 국민을 웃게 하고, 울게도 하는 묘한 행위의 장이다. 카타르 월드컵에서 보여준 극적인 16강 진출, 야구장에서 9회 말에 나온 역전 홈런, 등을 상상해 보자. 다시금 되짚어 봐도 웃음이 절로 난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 상대 팀을 응원하는 사람은 고통스럽고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스포츠는 모순투성이다.

스포츠 현장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학교체육, 대중스포츠. 프로스포츠 등 스포츠의 범위가 워낙 크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도 다양하다. 그런데 스포츠와 관련된 학교 폭력, 약물 복용, 승부 조작, 선수 일탈 등의 이슈들은 유독 다른 사건들에 비해 부정적인 면을 확대 해석하는 것이 오랜 관행처럼 되어왔다. 해당 선수의 뉘우침, 반성, 법적 책임과 상관없이 회복할 수 없는 낙인이 영원히 찍혀버리기도 한다.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생각되는 것이 스포츠에 내재된 ‘공정성’이라는 환상의 결과이다.

스포츠는 놀이, 규칙, 경쟁, 신체활동 등 다양한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 즉 스포츠는 자유로우면서도 즐거운 놀이일 수도 있고, 규칙을 통해 표준화되어 있기도 하고, 상대방과 자신 또는 대자연과의 경쟁도 있고, 제도화된 신체활동이 전제된 것으로 정의되곤 한다. 이렇게 스포츠는 엄격한 규칙 준수와 외부의 도움 없이 자신의 육체적 능력만으로 경쟁해야 한다는 순수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공정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온 것이다.

스포츠를 행하는 개인에 따라서 신체적 조건에서도 차이가 있고, 국가적 차원에서도 인구의 규모나 지원의 배경이 되는 경제적 지표가 확연한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러한 차이를 보완하기 위해 체급, 핸디캡, 샐러리캡(사치세) 등을 제도화하고 있지만, 스포츠를 순수한 경쟁으로 보는 시각은 점점 퇴색되고 있다. 또한 한때 라면만 먹고 뛰었다는 육상선수 임춘애의 사례와 같은 ‘헝그리 정신’만으로 스포츠를 지배할 수는 없는 세상이 되었다. 스포츠계는 참가한 선수 모두가 최대한의 불이익을 배제하고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게 노력을 아끼지 않지만, 조건 없는‘공정한 경쟁’만이 실현되는 곳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스포츠에서 공정성을 찾는 것은 출발점을 맞추려는 최소한의 ‘공정’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능력주의라는 미명하에 경쟁과 약육강식만을 강요하는 사회와 달리 스포츠는 공정한 규칙에서의 경쟁이라는 그 순수성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삶도 어쩌면 모순투성이지만 우리는 공정한 사회를 간절히 원한다. 진정한 의미의 ‘공정’이 실현될 수 있도록 도를 넘은 외압과 권위주의적 발상과는 이별해야 한다. 그렇기에 경쟁을 최우선의 가치로 하면서도, 모든 선수에게 동일한 조건을 제공하려는 스포츠에서 진정한 공정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올림픽의 시작이 경쟁이지만, 그 끝은 화합인 것처럼 결국 공정은 서로 간의 관계에서 배태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거기서 피어난 인류애가 본질인 스포츠, 그 스포츠에서 공정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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