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클릭아트

[충청투데이 김윤주 기자] ☞입이 가려진 3년을 보냈다. 외출할 땐 휴대폰·지갑과 함께 ‘마스크’를 챙기게 됐다. 현관문엔 마스크 걸이대 역할을 하는 자석이 식구 수만큼 붙어있다. 코로나 초기, 마스크를 거부하던 아들 녀석도 달라졌다. 이젠 마스크 없이 밖을 나가면 안 되는 줄 안다. 설령 마스크 없이 문밖에 나가더라도 "엄마 나 마스크가 없어요"라며 울상을 짓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아인 인생 4년 중 3년을 마스크와 보냈다. 코로나가 길들인 습관이었다.

☞입을 가리기 위해 용썼다. 감염병에 대한 두려움은 마스크 수요로 이어졌다. 그렇게 마스크는 ‘귀한 몸’이 됐다. ‘품귀 대란’ 현상에 사재기·매점매석 사례도 빈번했다. 이는 품절·가격 폭등 사태를 불러오기도 했다. 사실 이 땐 마스크 한 개로 며칠을 보내기도 했다. 돈이 있어도 살 수 없었다. 어쩔 땐 시간까지 바쳐도 살 수 없었다. 아침 일찍 줄을 서도 못 산적도 있었다. 결국 이때 정부는 마스크 수급까지 개입해야 했다. 그렇게 ‘공적 마스크 제도’가 탄생했다. 마스크 5부제를 시행해 출생연도에 따라 구매 요일을 정해 마스크를 구매하게 했다. 1인당 수량은 2매로 제한됐다. 얼마나 귀했으면 이 당시 최고의 선물은 ‘마스크’였다. 이후 마스크 업체가 급증하며 생산량도 안정화됐다.

☞입을 가리니 막히는 것도 있었다. 마스크가 지켜준다는 ‘안도감’과 무언가 갇혀있다는 ‘답답함’이 공존했다. 겨울엔 따뜻해서 좋았지만 여름엔 더워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불편을 못 견디는 ‘인간’이기에 장점보다 단점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건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맞이하는 사람들에겐 더욱 그랬다. 미루고 미뤘던 결혼식을 치른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마스크로 얼룩진 결혼식 사진을 받아야 했다. 지인 아들은 마스크를 쓰고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3년간 마스크를 낀 채 수업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친구들의 ‘맨 얼굴’을 잘 모르겠다고 토로할 정도다. 사촌 동생은 마스크를 쓰고 수능을 치렀다. 인생 대부분을 마스크와 보낸 우리 집 꼬마는 말은 잘해도 발음이 부정확하다. 어쩌면, 마스크는 입이 아니라 우리 인생 일부분을 가렸을지도 모른다.

☞그랬던 마스크를 벗는다. 30일부터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자율·권고로 전환된다. 팬데믹의 상징이자 동반자였던 ‘마스크’와 이별하는 셈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감염 취약시설·의료기관·대중교통 등에선 써야 한다. 그럼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지난해 9월,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전면 해제된 것에 이어 또 다른 시작이다. 낯선 ‘해방감’이다. 사실 당분간은 따뜻하고 또 어색해서 계속 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젠 마스크를 사지 않아도 된다는 묘한 쾌감이 밀려든다. 또 이젠 마스크 끈이 끊어졌다고 당황해하지 않아도 된다. 깜빡해도 괜찮다. 그간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얼굴을 가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첩보작전을 펼쳤던가. 아직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은 것은 못내 아쉽다. 하지만 또 이렇게 나아간다. 사실 지금 주위 사람을 떠올리면 마스크를 쓴 얼굴부터 떠오른다. 이젠 마스크를 벗은 ‘웃는 얼굴’이 떠오르길 기대한다.

김윤주 편집팀장 maybe0412@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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