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홍석 ETRI 기업성장지원전략실 책임연구원

서홍석 책임연구원
서홍석 책임연구원

정부출연연구원에 입사한 지 올해로 20년이 흘렀다. 처음 입사해서는 대학원에서 공부해 온 것에 연속으로 느꼈지만 다른 점은 프로젝트, 즉 연구과제라는 것을 수행하고 연구결과를 만들어 내는 점이었다. 결과물이 대학원에서는 논문 또는 연구결과 보고서 정도였지만, 연구원에서는 결과물이 산업에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기술이전 등이 기업에 가능한지를 중요시 여기는 점이 달랐다.

정부출연연구원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된다. 따라서 연구원들이 연구한 결과물이 나라를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라와 국민을 발전시키려면 기업에서 결과물들이 상용화되면서 국가의 기술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물론 논문과 특허를 많이 쓰는것도 국가 경쟁력 지수와 기술 보호를 위해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이런 것들을 미리 고려해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원들은 없을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연구 결과물은 연구 수행중에 얻어지는 부산물이라 믿는다. 연구 수행 중에 좋은 아이디어가 생긴다면 논문과 특허로 결과물을 만들고, 연구 수행 중 일부 결과물이 상용화에 좋을 것 같다면 기업에 기술이전이나 기술 출자를 하면 된다.

물론, 필자가 수행했던 프로젝트가 모두 논문이나 특허, 기술이전 등 3P 실적이 많이 이뤄졌던 건 아니다. A 프로젝트는 한쪽에 편중돼 결과물이 나왔고 B 프로젝트는 기술이전을, 또 다른 C 프로젝트는 아무런 결과물을 만들어 내지 못한 적도 있었다. 연구원들이 연구를 수행하면서 일이 재밌다고 느껴질 때는 아마도 위의 3P 실적이 잘 됐을 때를 의미하는 것 같다. 따라서 일이 지루하고 루틴하게 느껴진다면 위의 성과 또한 숙제하듯이 여겨진다. 마치 과제 목표만 형식적으로 맞추면서 최소한의 일만 수행하는 셈이다.

연구원 생활 10년이 지나서는 본격 과제 기획에도 참여하게 됐다. 연구 과제를 수주해 오는 과정에서 정부 과제의 경우 타 연구기관 간 갈등도 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수주한 과제이지만 수행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도 심하다. 물론, 과제 기획이 잘 이뤄져 과제 3개를 동시에 수행한 적도 있다. 오 나의 전성기 인가? 아니다. 그때가 돌이켜 생각해 보면 가장 불행했던 시기였고 필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해 이룬 연구성과도 적었다.

필자가 속한 연구원은 정부과제중심제도(PBS)가 70%나 달한다. 연구 프로젝트를 수주하지 않으면 연구원들이 인건비를 받지 못하는 구조이다. 따라서 많은 연구원들이 과제수주를 위한 과제기획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필자가 어떤 연구를 기획해 내는 사업계획서는 필자가 하고 싶은 연구와는 거리가 좀 있다. 혹, 과제가 수주돼도 제안서 초안과는 많이 수정돼 최종제안이 이뤄진다. 물론 이러한 과제수주는 정부출연연구원은 물론, 대학, 기업 등과 치열한 경쟁을 통해 얻은 연구과제가 된다. 아쉬운 부분이다.

4차산업혁명과 디지털 전환과 같은 세계적 흐름에 잘 올라타야 할 절호의 찬스가 오고 있다. 선진국과 경쟁해 어떻게 창의적인 연구로 성과향상에 기여할 지 고민이 시급하다. 이로써 개인의 발전, 역량강화, 국가의 경제발전은 자연스레 이어질 것이다. 과연 재밌는 연구란 무엇인가? 필자는 연구결과 수행중에 연구하는 게 재밌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일에 몰입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로써 수행한 연구 결과물은 숙제로 다가오는 게 아닌 저절로 생기는 부산물이 돼야 할 거라 생각한다. 과도한 과제 기획 경쟁에서 많은 시간을 빼앗기기 보다는 연구원으로서 스스로의 연구 역량강화와 국가 기술 발전에 기여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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